한글 모르다 '이종희체' 만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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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11 05:00 수정 : 2021-06-11 15:00

[앵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분이 여전히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글을 모른다는 답답함보단 글을 모른다는 사실이 남들에게 알려질까 봐 마음 졸이며 평생을 살아온 분들.

경북 칠곡에 사는 이종희 할머니는 얼마 전 한글을 깨우친 것을 넘어 할머니 이름을 딴 글씨체까지 출시해 화제입니다.

이종희체의 주인공을 저희 취재진이 만났습니다.

남창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경북 칠곡군 왜관읍 금남2리 마을회관.

마을회관 벽에 그려진 꽃들 사이사이로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보입니다.

회관으로 들어가는 길옆 쓰레기 분리수거장에도 정겨운 글씨가 눈에 띕니다.

글씨의 주인공은 이종희 할머니입니다.

재활용을 뜻하는 영문 리싸이클(RECYCLE)도 할머니 솜씨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 왜관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한글을 깨칠 시기를 놓쳤습니다.

할머니가 학교에 다닌 기억이라고는 일제강점기뿐이었습니다.

<이종희 크리스타 / 대구대교구 가실본당>
“그렇지 일본말 배웠지. 그때는 학교 가면 조선말 하면 안 된다. 일본말 해야 되지.”

4남 2녀를 둔 이종희 할머니는 한글을 몰라 불편함은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할아버지와 오이, 토마토를 기르며 살아온 할머니.

버튼 하나로 물이 나오고, 불이 들어오는 시대를 사는 것은 호강이라고 혀를 내두릅니다.

농사지으며 자녀 여섯을 키우다 보니 공부할 시기를 놓친 할머니에게 한글공부 바람이 분 건 손자 덕분입니다.

2008년부터 10년 넘게 마을회관에 있는 칠곡늘배움학교를 다니며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칠곡군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한글교육을 받은 할머니들의 시를 엮어 3권의 시집을 발간했습니다.

1집 「시가 뭐고?」가 대박이 나면서 할머니들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종희 할머니도 시 ‘쇠비름’으로 시집을 낸 어엿한 작가입니다.

<이종희 그리스다 / 대구대교구 가실본당> 0057 (3~42초)
“쇠비름. 이종희. 둘째 딸이 쇠비름 무침이 먹고 싶답니다. 온갖 좋은 것 다 먹고 살았을 텐데 딸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어릴 때 나물이 귀해 밭에 잡초처럼 자라 쇠비름으로
나물을 무쳐서 먹었습니다.“

칠곡군은 시집 출간에 이어 지난해 400여 명 할머니 시인 가운데 개성이 강한 글씨체를 선정했습니다.

이중에 원작자 이름을 넣어 칠곡할매 권안자체·이원순체·추유을체·김영분체·이종희체 등 5가지 글꼴을 제작해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할머니의 이종희체는 다섯 글꼴 중 하나로 선정됐습니다.

금남2리 이장인 아들 이은수씨는 “어머니가 한글을 배우면서 더 행복해지셨고 마을축제에서 직접 쓰신 시 낭독도 하시며 자존감도 높아지셨다”고 기뻐했습니다.

이종희 할머니는 지난달 제17회 군민의 날을 맞아 백선기(미카엘) 칠곡군수로부터 ‘자랑스러운 군민상’도 받았습니다.

코로나19 전까진 주일미사를 빠진 적이 없다는 이종희 할머니.

할머니는 “배우는 건 좋은 일”이라며 “젊을 때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CPBC 남창우입니다.










cpbc 남창우 기자 | 입력 : 2021-06-11 05:00 수정 : 2021-06-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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