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주교는 고인이 우리 사회와 교회에 남긴 메시지를 되새기고, 그분의 삶의 향기를 쫓는 것은 매우 의미 깊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우리 사회와 교회의 위로와 위안이 되어주시며 그야말로 밤 하늘의 별빛 같은 삶을 정 추기경님께서는 사셨습니다. 이번 사진전은 그런 정 추기경님의 삶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뜻깊은 자리라 생각됩니다." 염수정 추기경은 정 추기경께서는 주님의 뜻을 찾는 데서 참 행복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고 회고했습니다.
<염수정 추기경 / 前 서울대교구장> "우리 모두 주님의 뜻 안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합니다.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 정진석 추기경의 어릴 적 모습에서부터 은퇴 후 소소한 일상을 담은 사진 30여점을 보고 있노라면 애틋한 그리움이 솟아납니다.
<이정숙 엘리사벳 / 마산교구 양곡본당> "너무 그리워요. 물론 하늘나라에서 굉장히 편안하시리라 생각하고 1주기 추도회를 맞이하여서 우리도,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이런데도 더 많이 도와주시도록 저희들도 기도하고 또 편안하시도록 기도 보태겠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던 1939년 7월, 아홉 살 때 첫 영성체를 기념해 찍은 사진.
단정한 차림의 옷매무새와 깍지를 끼고 두 손을 모은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1942년 노기남 주교 서품식 당시, 열두 살 소년 복사의 표정에선 제법 의젓함이 느껴집니다.
1961년 3월 사제품을 받고 첫 미사 후 가족들과 함께했을 때도, 1970년 10월 만 39살의 최연소 나이로 청주교구장에 임명되고 주교좌에 착좌한 후에도, 지극한 효심을 드러냈던 고 정진석 추기경.
어머니 이복순 루치아 여사의 손을 꼭 잡고 활짝 웃는 표정이 마치 천상에서의 모자 상봉을 떠올리게 합니다.
1970년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청주교구장 시절.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해맑은 웃음에 둘러싸인 고인의 표정이 자애롭기 그지 없습니다.
1998년 6월 서울대교구장 착좌를 위해 당시 김수환 추기경과 나란히 주교좌로 향하는, 한국인 두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돼 모관을 수여받는 고인의 모습은 당시의 기쁨을 생생히 전하는 듯합니다.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뒤 저술 활동에 매진하며, 선종하기까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고자 삶을 하느님께 오롯이 봉헌했던 고 정진석 추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