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TV
RADIO
신문
뉴스
가톨릭
VOD
선교후원
온에어
TV
RADIO
편성표
TV
RADIO
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검색
제 1663호 2022년 05월 22일 부활 제6주일
가톨릭평화신문 네이버포스트
가톨릭평화신문 인스타그램
가톨릭평화신문 페이스북
PDF
신문검색
신문검색폼
온라인뉴스
교구종합
공동체본당
세계교회
여론사람들
기획특집
가정청소년
사목영성
문화출판
사회사목
구독신청
신 김대건·최양업 전
일반기사
연재기사
김대건 순교 소식에 비탄에 빠진 최양업, 조선 입국마저 무산
[신 김대건·최양업 전] (48)최양업의 눈물
병오년, 박해의 피바람이 불다김대건 신부가 붙잡히자 조정은 그를 도운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체포령을 내렸다. 이에 1846년 5월부터 7월에 현석문(가롤로)와 김임이(데레사), 이간난(아가타), 우술임(수산나), 정철염(가타리나), 임치백(요셉), 남경문(베드로), 한이형(라우렌시오) 등 약 30명이 체포됐다. 이들 중 김대건 신부가 ...
조선인 첫 사제 김대건, 칼을 맞고 거룩한 죽음을 맞다
[신 김대건·최양업 전] (47)김대건 신부의 순교
이름: 김대건(우대건) 나이: 25세 출신: 중국 광동성 오문현(현 마카오) 종교: 천주교 압수 물품: 언문 소책자 1권, 붉은 비단 주머니 1개(성모자상과 예수성심상이 새겨진 무명 조각 2개가 들어있음). 특이 사항: 머리카락을 반쯤 잘라 기르지 않은 흔적이 있음. 진술 내용: 본래 중국 광동성 오문현 사람으로 성은 우(于)이고, 이...
선교사 입국 도우려 다시 뱃길에 오른 김대건 신부, 결국 체포돼
[신 김대건·최양업 전] (46)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항해
해로 개척을 위해 김대건 신부는 1846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곧바로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라 선교사 입국을 위한 해로 개척에 나섰다. 여행 준비 기간 페레올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에게 보낼 보고서와 편지를 라틴어로 썼다.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들의 입국에 꼭 필요한 조선 지도 2점을 그렸다. 김대건 ...
조선 선교의 자유 얻기 위해 무력 사용도 고려한 페레올 주교
[신 김대건·최양업 전] (45)페레올 주교의 고민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는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가 경원 개시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둘은 왜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가 국경을 넘지 못했는지 분석했다. 겨울철 만주 벌판을 지나 훈춘까지 가는 여행길이 얼마나 험하고 위험한지 김대건 신부는 직접 체험한 바 있다. 페레올 주...
사제가 돼 돌아온 아들 10년 만에 만난 어머니, 감격의 눈물
[신 김대건·최양업 전] (44)페레올 주교 한양 입성
한양에서 미사와 성사를 베풀다조선 입국 후 강경에 은신하고 있던 페레올 주교는 1845년 주님 탄생 대축일 즈음에 한양에 안착했다. “저는 조선의 수도에 도착한 지가 얼마 안 됩니다. 출발하기 전에 우리 신자들 가운데 몇몇이 저에게 엄청나게 큰 위험을 겪을지 모른다고 말했으나, 그 위험은 다행히도 단지 그 신자들의 상상의 산물이었을 뿐...
최양업 부제 일행, 중국 국경 수비대에 체포돼 조선 입국 좌절
[신 김대건·최양업 전](43)최양업, 조선 입국 시도했으나
“언젠가 좋으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저의 동포들을 만날 행운이 저에게 다가오기를 하루하루 바라면서 머물러 있습니다. 저의 동포들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탄식과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습니다.…정말 저는 부끄럽습니다. 이렇듯이 훌륭한 내 동포들이며, 이렇듯이 용감한 내 겨레인데, 저는 아직도 너무나 연약하고 미숙함 속에 허덕이고 있습...
페레올 주교, 강경에서 우리말 배우며 조선 교회 상황 파악
[신 김대건·최양업 전] (42)강경에 머물며
새 배를 구하라“선원 두 사람이 우리를 업어다 순교자들의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제 착좌식은 그리 화려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일을 소리 없이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야음을 틈타서 앞장서서 가는 신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 집은 흙으로 지어진 초라한 초가였습니다. 방이 두 칸 있었고, 높이가 3피에(약 96㎝)...
강경 부근의 황산포 나바위 도착, 드디어 조선 본토에 발 디뎌
[신 김대건·최양업 전] (41) 조선 본토에 도착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 목적지는 어디인가김대건 신부 일행은 라파엘호를 타고 1845년 10월 12일 충청도 은진현 강경을 통해 조선에 입국했다. 페레올 주교를 입국시키기 위해 그해 4월 30일 한양에서 출발한 지 165일, 사제품을 받고 8월 31일 상해에서 귀국길에 오른 지 43일 만이다. 이로써 김대건 신부와 조선 신자 11명은 페레...
제주 표착 확인 후 바로 조선 본토로 항해
[신 김대건·최양업 전] (40) 제주 표착
라파엘호 제주 표착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ㆍ김대건 신부 그리고 조선 신자 11명이 탄 라파엘호는 1845년 9월 28일 제주도에 표착했다. 아쉽게도 라파엘호에 있던 그 누구도 표착 장소에 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해류에 따라 라파엘호가 표류했을 제주 서쪽 바다에는 비양도, 차귀도, 가파도 세 섬이 있는...
라파엘호, 죽음의 폭풍우 헤치고 기적적으로 제주 표착
[신 김대건·최양업 전] (39)페레올 주교와 조선으로
상해에서 출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조선 선교사 다블뤼 신부 그리고 김대건 신부와 11명의 조선인 신자들은 상해에서 귀국길에 오른다.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타고 온 라파엘호의 수리도 모두 마무리됐다. 폭풍우를 만나 부러진 돛과 키는 새것으로 교체됐지만, 조선 배에 중국식 돛과 키를 단 라파엘호는 마치 한복 차림에 양복 윗도리...
조선인 첫 사제의 탄생, 신자들 감격의 눈물 흘려
[신 김대건·최양업 전] (38)김대건 사제 수품
라파엘호에서의 선상 미사김대건 부제는 1845년 6월 4일 상해에 도착한 후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함께 라파엘호를 타고 상해를 떠나 귀국할 때까지 프랑스 예수회 출신 클로드 고틀랑(Claude Gotteland, 1803~1856) 신부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는다. 고틀랑 신부는 산동대목구장이며 남경교구장 서리인 이탈...
거친 폭풍우 만난 라파엘호, 죽음의 공포에서 성모님께 매달리다
[신 김대건·최양업 전] (37) 뱃길로 중국 상해 도착
무동력선 타고 중국으로목선인 라파엘호는 동력선이 아니어서 자연 현상 곧 물흐름(해류와 조류)과 바람을 이용해 항해해야 했다. 동중국해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지나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이 바로 ‘구로시오 해류’이다. 구로시오 해류는 대만에서 양 갈래로 나뉜다. 그중 중국 절강성 주산군도에서 동북향으로 흐르다가 제주도 서남단에서 다...
페레올 주교 데려오기 위해 목선 라파엘호 타고 중국으로 향하다
[성 김대건·최양업 전] (36)라파엘호 출항
김대건 등 라파엘호 승선자들김대건 부제는 페레올 주교가 지시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1845년 4월 30일 조선대목구 재산인 배를 타고 마포나루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목적지는 중국 강남이었다. 페레올 주교를 이곳에서 만나 이 배로 조선에 입국시키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현석문(가롤로)과 이재의(토마스), 최형(베드로), ...
‘조선전도’ 만들고 조선 순교사와 순교자들에 관한 보고서 작성
[신 김대건·최양업 전] (35)김대건은 한양에서 무엇을 했나
100여 일 동안 한 일 김대건 부제는 1845년 1월 15일 한양에 도착해 4월 30일까지 머물렀다. 그럼 김 부제는 106일 동안 한양 소공동 돌우물골에 머물면서 무슨 일을 했는지 살펴보자.김대건 부제는 한양에 머물면서 페레올 주교가 지시한 다섯 가지 일을 처리했다. 먼저, 페레올 주교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입국했을...
김대건 부제, 한양 중심지에 머물며 집 한 채 따로 마련
[성 김대건·최양업 전] (34)김대건 부제, 돌우물골에 머물다
김대건 부제는 1845년 1월 15일 한양에 도착해 그해 4월 30일까지 소공동 돌우물골(石井洞) 남별궁(南別宮) 뒤편 우물가를 지나 두 번째 초가에서 생활했다. 만 106일이라는 꽤 긴 시간을 김대건 부제는 이 집에 기거했다. 1840년대에 김정호가 제작한 한성지도 「수선전도」는 남별궁 옆을 돌우물골로 표시하고 있다. 남별궁은 조선...
묵주기도에 의지, 강추위와 싸우며 국경 넘어 한양으로
[신 김대건·최양업 전] (33)김대건 부제, 조선으로
김대건 부제는 1845년 1월 1일 봉황문 책문에서 페레올 주교와 함께 자신들을 데리러 온 김 프란치스코와 조선인 신자 2명을 만났다. 페레올 주교는 이들로부터 자신의 조선 입국이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그는 마카오로 돌아가기로 하고, 김 부제 홀로 신자들과 입국해 조선 정세를 파악하고 중국 강남에서 만나기로 했다. 눈 쌓인 숲 ...
페레올 주교가 세 차례의 기회 차버리면서 조선 입국 계속 늦어져
[신 김대건·최양업 전] (32)두 신학생의 부제 수품과 조선 입국의 난항
최양업ㆍ김대건 부제 되다신학생 김대건은 1844년 2월부터 두 달간의 두만강을 통한 조선 입국 탐사를 마치고 그해 4월 페레올 주교와 메스트르 신부가 있는 소팔가자로 돌아왔다. 이에 앞서 요동반도 백가점에 남아있던 메스트르 신부는 1843년 12월 31일 개주 양관에서 거행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 서품식에 참여한 뒤 1844...
맹수 득실대는 산림 뚫고 왕복 1600㎞ 대장정, 두만강 국경 탐사
[신 김대건·최양업 전] (31)조선 입국 탐사와 김대건의 ‘훈춘 기행문’
신학생 김대건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의 지시로 1844년 2월 5일 2개월 여정으로 중국 만주 길림성 소팔가자에서 두만강 국경을 통한 조선 입국 탐사 길에 오른다. 그의 말대로라면 편도 2000리, 왕복 1600㎞의 대장정이었다. 김대건은 이 여행 보고서를 ‘훈춘 기행문’이란 제목으로 페레올 주교에게 제출했다. 훈춘 기행문(김대건의...
페레올 주교의 안전주의에 조선 입국로 탐색만 하며 시간 흘러
[신 김대건·최양업 전] (30)두만강 입국로 개척
신학생 김대건의 성직자 영입을 위한 압록강 입국 시도에 이어 두 번에 걸쳐 두만강을 통한 입국로 개척 과정을 살펴본다. 김대건은 신학생 시절 조선에 두 차례 입국했다. 첫 번째는 1842년 12월 29일 압록강을 건너 의주까지 왔다가 1843년 1월 1일 다시 중국 봉황성 책문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는 1844년 3월 8일 두만강을 건...
검문검색과 살을 에는 추위 뚫고 홀로 국경을 넘나들어
[신 김대건·최양업 전] (29)의주 땅을 밟고 돌아오다
부친과 최양업 부모의 순교신학생 김대건은 1842년 12월 27일 중국 봉황성에서 약 8㎞ 떨어진 지점에서 우연히 조선의 동지사 일행과 마주쳤고, 그들 속에 있던 조선 교회 밀사 김 프란치스코를 만났다. 김대건은 그로부터 1839년 기해박해로 앵베르 주교를 비롯한 모방ㆍ샤스탕 신부와 신자 200여 명이 순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친 ...
부모와 선교 사제들 순교 소식에 눈물 훔치며 결연히 길을 나서다
[성 김대건·최양업 전] (28)가자! 조선으로
브뤼니에르 신부, 지역민에게 피살최양업과 김대건 그리고 메스트르 신부와 브뤼니에르 신부는 1842년 10월 23일 중국 요동반도 남단 태장하에 도착한 후 수레를 타고 이틀을 간 후 25일 백가점(白家店) 교우촌에 당도했다. 백가점은 바다에서 약 28㎞ 떨어진 곳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200여 명의 신자가 살고 있었다. 외...
김대건·최양업에 앞서 중국 내륙의 입국로 개척한 파란 눈의 신부
[신 김대건·최양업 전] (27)페레올 신부
1842년 10월 23일 최양업과 김대건, 메스트르 신부와 브뤼니에르 신부는 중국 요동반도 남단 태장하 백가점 교우촌에 도착했다. 여기서 최양업과 브뤼니에르 신부는 만주대목구장 베롤 주교가 있는 개주 양관 교우촌으로 갔고, 김대건과 메스트르 신부는 백가점에 머물면서 겨울이 오면 봉황성 책문을 통해 조선으로 입국하기로 했다. 이번 호에는...
만주행 여정 중 세관에게 붙잡힐 위기 가까스로 모면
[성 김대건·최양업 전] (26)조선 입국로 개척, 만주로 가다
신학생 최양업과 김대건 그리고 메스트르 신부와 드 라 브뤼니에르 신부, 길 안내인 범 요한은 1842년 10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자정 무렵 산동대목구장이며 남경교구장 서리인 베시 주교가 마련해준 중국인 신자 배에 몰래 오른다. 상해 장가루에 정박해 있던 이 배는 돛이 5개가 달린 150톤급 배였다. 우리나라 해군 참수리 고속정이...
조선행 경비 지원 등 선교사들 도와준 중국 교회 주교들
[신 김대건·최양업 전] (25) 1840년 전후 중국 교회
이번 호부터 몇 회에 걸쳐 신학생 김대건과 최양업이 교황 파견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로 개척을 위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김대건ㆍ최양업이 신학생으로 선발된 때부터 프랑스 군함을 타고 중국 땅을 밟을 때까지가 제1장이라면, 지금부터 연재하는 두 조선인 신학생들의 조선 입국로 개척 활동은 연재물의 제2장에 해당한다. 시기로는 ...
에리곤호에서 하선한 김대건 일행, 남경 거쳐 장가루에서 체류
[신 김대건·최양업 전] (24)에리곤호를 떠나보내고
버려진 김대건과 메스트르 신부1842년 9월 11일 김대건과 메스트르 신부는 오송항 선착장에 서서 부두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가는 에리곤호를 허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에리곤호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자 둘은 자신의 짐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버려졌다’는 씁쓸함이 울컥 목구멍 위로 올라왔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9월 9일 오송으로 돌아와...
기사 더 보기
발행일자조회
전체
많이 본 기사
01
물질과 권력 숭배, 팬데믹보다 심각… 교회는 세속화...
02
탄생 100주년 김수환 추기경 시복 추진
03
성가대, 노래 연습이 아니라 ‘소명 의식’과 ‘영성...
04
“부르심 받은 복음의 사도로 달릴 길을 다 달리겠습...
05
청년은 가톨릭의 미래, 교회도 MZ세대 취향에 집중...
06
김수환 추기경 탄생 100주년, 미공개 사진 특별전...
07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교회 공직자 선거 운...
08
한국 주교단, 감사 미사 봉헌하고 보편 교회와 일치...
09
가톨릭 청년들이 ‘주님 말씀’과 함께 울고 웃으며 ...
10
월화수목금, 다섯 빛깔 DJ 신부님들 한자리에 모여...
알립니다
[알림] 제9회 신앙체험수기 수상작 선정
[알림] 제9회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신앙 체험 ...
[알림] 제8회 신앙체험수기 수상작 선정
[알림] 제8회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신앙 체험 ...
오늘의 소사
2021
대전교구 서천본당, 순교자 이화만 가족묘
2021
춘천교구 양양본당 설립 100주년 감사
2021
부산교구 신호철 보좌주교 임명
2014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 창립
2010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금호1가동선교본
2005
서울대교구 대치3성모탄신본당 새 성전 축
2005
장애영유아 생활시설 디딤자리 축복
2004
제9대 주한 교황대사 에밀 폴 체릭 대주
2001
4대종단 환경단체 종교환경회의 설립
1998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 임명
1988
청주교구 복대동본당 신설
1986
필리핀 마닐라 근교 롤롬보이 성 김대건
1951
전주교구 삼례본당 신설
1932
마산교구 합천본당 신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