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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 받으며 청년 김대건과 함께 걷자

가을 햇살 받으며 청년 김대건과 함께 걷자

[특집- 김대건을 따라 걷다] 오직 하느님만 바라본 순교자 김대건을 마음에 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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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19 발행 [1630호]

▲ 올 들어 수원교구와 용인시가 청년 김대건 길을 명품 순례길로 조성하기 시작하면서 청년 김대건 길 순례 붐이 일고 있다.



청년 김대건(안드레아, 1821∼1846)의 길을 따라 걷는다. 그 길은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 곧 ‘페레그리나티오’(Peregrinatio, 순례)다. 우리 삶의 자리, 거처는 오직 하느님이라는 믿음의 표현으로서의 순례다. 올해는 특히 김대건 신부가 탄생한 지 200주년을 맞는 희년, 그 기쁨의 해인 데다 9월은 순교자 성월이어서 성인의 삶과 사목, 순교 여정을 따라 ‘성찰하며’ 걷는 길이 더 뜻깊다. 19일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경축 이동)을 맞아 김대건 신부의 탄생, 성장과 사목, 순교 등 세 부분으로 나눠 김대건 신부의 삶을 새기며 걷는 특집 ‘김대건을 따라 걷다’를 기획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 ‘버그내 순례길’




▲ 13㎞ 코스의 버그내 순례길을 다 걷고 신자들이 순례의 종착지인 신리성지에 들어서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는 충청도 면천의 솔뫼다. 지금의 충남 당진시 우강면 솔뫼로 132(송산리). 땅 깊숙이 바닷물 길이 휘어 들어온 내포(內浦)의 ‘소나무가 뫼(산)’를 이룬 곳이다. 내포하면,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 팔도총론 항목에서 “충청도에서 가장 좋은 땅”이라고 할 만큼 풍요로운 대지다. 공주 서북쪽 200여 리에 있는 가야산 앞뒤 10여 고을이 내포다. 산이 험하지 않을뿐더러 평야가 넓게 자리 잡고 있어 농산물이 풍부하고, 바다가 가까워 수산물이 넘치며, 백성들도 각박하지 않아 느리고 삶에 여유가 있으며, 예술과 문화가 발달했다.

버그내 순례길은 지금도 「택리지」에서 묘사하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내포의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한적한 평야 샛길을 따라 걷는 길이고, 시선이 닿는 곳마다 지평선이다. 사시사철 달라지는 내포 풍경과 성지를 보러 ‘사계절 순례’를 하는 방법도 괜찮다.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의 말마따나 “내포는 사방이 다 물길로 둘러싸인 늪지”라는 말이 실감 난다. 봄이면 사방으로 물 댄 논이 이어지고, 모내기하고 나면 양탄자와도 같은 파란 잔디밭이 펼쳐진다. 가을이면 벼가 고개를 숙이고 익어가며 황금 들녘으로 물들고, 겨울이면 흰 눈에 뒤덮인 평야가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코스는 솔뫼성지를 출발해 2017년에 세계관개시설 유산으로 등록된 합덕제와 수리민속박물관→공세리성당과 함께 대전교구의 첫 성당인 합덕성당→합덕제 중수비→순교복자 원시장ㆍ시보 우물→무명순교자의 묘→신리성지에 이르는 13㎞ 구간이다. 모두 합덕읍에 속한다. 합덕읍 송산리에서 합덕리, 대합덕리, 성동리, 대전리를 지나 신리에 이르는 순례 코스다. 순례길 이름은 합덕 전통시장인 버그내 장터에서 땄다. 합덕 읍내를 지나 삽교천으로 흘러드는 물길 범근천(泛斤川)의 이두식 발음이 버그내여서 순례길 이름도 그대로 썼다. 합덕 읍내 버그내장터를 거치지 않는 대전교구 내포도보성지순례와 코스가 거의 비슷하다. 둘 다 서너 시간이면, 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길을 걷는 동안의 관건은 그리스도 중심적 삶으로의 내적 전환, 곧 회심이다. 순교자들로만 일가를 이뤘던 김대건 가계를 떠올리면서 그 순교신심을 곱씹어볼 만하다. 김대건 일가는 순교자만 10위를 냈고, 그중 복자가 김대건의 증조부 김진후(비오, 1739∼1814)와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 ?∼1816) 등 2위, 성인이 김대건 성인의 당고모인 김종한의 딸 김 데레사(1796∼1840)와 아버지인 김제준(이냐시오, 1796∼1839), 김대건 성인까지 합쳐 3위다. 성인 가계의 순교신심은 ‘그리스도 중심적 삶’에서 비롯된다는 걸 김종한 복자에게서 엿볼 수 있다. 김종한 복자는 형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슨 일이든지 예수를 위하여 하십시오”라고 말하며, 삶의 최종 목적은 천국이고, 그 천국은 예수님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그래서 순교자들은 죽기까지 온전히 주님께만 사로잡혀 주님 뜻만 따르는 삶을 선택했다. 그 은총이 바로 순교였고, 그랬기에 순교 복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은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었다.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성태 신부는 “내포는 시선이 미치는 만큼씩 순교자의 터전을 보게 되고, 발길이 닿는 만큼 순교자의 자취에 발을 포개게 된다”며 “내포는 어디든지 순교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 동네가 없을 만큼 순교자가 많고, 그래서 성인과 복자 또한 헤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내포 순례길은 정해진 코스가 있고, 성지도 있지만, 설령 길을 잘못 들어가서 걸어도, 또 때로 길을 돌아서 가도 내딛는 발걸음마다 성지를 만나게 되고 순례가 될 정도로 순교 성지나 사적지가 많다”고 전했다.



# ‘청년 김대건 길’



▲ 청년 김대건 길의 종착지인 미리내성지의 103위 성전. 김대건 성인의 종아리뼈가 모셔져 있다.


그리스도를 위한, 그리스도를 향한 순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본질적’ 부르심이다. 기도를 통해 준비하고, 사랑의 섬김과 함께 걷고, 순교로 나아간다. 김대건도 떠났다. 그 떠남은 그러나 ‘새로운 것을 체험하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자신을 ‘새롭게 하는’ 회심과 성찰의 여정이었다. 김대건은 1836년 신학생으로 선발된다. 그해 주님 부활 대축일을 전후해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를 순방하던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 모방 신부는 골배마실 인근 은이에서 김대건을 신학생으로 선발하고 세례를 준다. 김대건이 거룩한 부르심 즉 성소를 키워갔던 신앙의 여정은 훗날 청년 김대건이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하이 진자샹(金家巷)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고 귀국해 걸었던 1년여의 짧은 사목적 삶으로 이어진다. 그 여정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떠난’ 길이었다.

수원교구는 올 들어 용인시와 함께 김대건 신부를 따라 걷는 도보 순례길로 ‘청년 김대건 길’을 정비하고, 이정표와 안내판, 표지석 등 설치를 마무리했다. 소년 김대건이 세례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성소의 요람’ 용인 은이성지에서 성인의 유해가 안장됐던 안성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코스다. 그러나 청년 김대건 길은 평야를 걷는 버그내 순례길과는 그 결이 다르다.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까지 가는 길에는 험한 고개가 셋이나 있다. 신덕, 망덕, 애덕 고개다. 이 고갯길은 김대건 신부가 사목하기 위해 넘나들던 힘겹고도 기쁨에 찬 행로였고,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 뒤에는 이민식(빈첸시오)이 김 신부의 유해를 옮긴 눈물의 경로였다. 그래서 교우들은 이 고개를 신덕고개(은이고개), 망덕고개(해실이고개), 애덕고개(오두재고개)라고 부르며 순례했고, 김대건 신부의 뜨겁던 순교신심을 기억했다.

그 길은 청년 김대건 길과 문수산 길, 골배마실 길, 한덕 길, 고초골공소 길 등 총 5개 코스가 있다. 청년 김대건 길(사랑의 길-마을길)은 은이성지→신덕고개→망덕고개→애덕고개→미리내성지까지 10.3㎞, 문수산길(사랑의 길-능선길)도 은이성지→신덕고개→문수봉→애덕고개를 거쳐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10.3㎞다. 둘 다 5시간이 넘게 걸린다. 골배마실길(믿음의 길)도 은이성지에서 은이골 가족캠핑장→신덕고개→칠봉산→골배마실성지까지 4.4㎞ 코스로, 2시간가량 소요된다. 5개 코스 중 가장 긴 한덕길(희망의 길)은 은이성지를 시작으로 신덕고개→망덕고개→애덕고개를 지나 한덕골성지에 이르는 19.2㎞ 여정으로, 10시간이 넘게 걸린다. 마지막 길은 고초골공소길(굳셈의 길)로 고초골공소에서 애덕고개를 잇는 4.1㎞ 구간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다섯 구간을 완주하려면, 48.3㎞나 된다. 용인시에선 이 순례 코스를 김대건 신부가 유년기를 보낸 골배마실 성지와 광교산 자락 손골성지, 등록문화재 708호 고초골공소 등과 연계했다.

 

수원교구 청소년위, ‘백신나눔 챌린지’ 30일까지

수원교구 청소년위원회는 최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순교자 성월을 맞아 오는 30일까지 한 달간 특별한 도전에 들어갔다. ‘신부 김대건 길에서 만나다’ 백신 나눔 챌린지다. 청년 김대건 길을 걸으며 성인의 순교정신을 되새기고 백신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라들 이웃에 백신을 나누고자 하는 취지다. 백신 나눔 챌린지에 참가하려면 ‘워크온’ 앱을 내려받아 회원에 가입한 뒤 앱에 있는 ‘커뮤니티’란에서 ‘신부 김대건 길에서 만나다 백신 나눔 챌린지’에 신청하면 된다. 지정 코스는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은이, 골배마실에서 출발해 신덕ㆍ망덕ㆍ애덕고개를 거쳐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총 10.3㎞ 구간이다.

수원교구 1대리구 복음화1국장 이철구 신부는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순례를 통해 김대건 신부님의 영성을 되새기고, 나아가 김대건 신부님이 한국 교회의 첫 사제니까, 청년 김대건 길 순례가 한국의 모든 신부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우들의 기도공장 역할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 “김대건 신부님께서 서한에서 교우나 벗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청년 김대건 길을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서로서로 진정한 교우라고 불러주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
 


▲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을 순례하다가 절두산성지에 들러 무명순교자 조형물을 바라보며 그 뜻을 새기는 젊은 순례자들.

 
▲ 김대건 신부 치명 터인 새남터성당에는 늘 순례자들이 성인의 전구를 청하기 위해 모여든다.

김대건 신부의 생애는 짧았다. 25년 1개월에 불과했다. 사목활동 기간 또한 김대건 신부가 1846년 6월 5일 체포된 점을 감안하면, 1년이 채 못 됐다. 백령도에서 중국 어선과 접촉해 편지와 지도를 탁송한 뒤 순위도에 왔다가 체포된 김대건 신부는 순위도 등산진과 옹진, 해주감영을 거쳐 서울 포도청으로 이송됐고, 3개월간 46차례의 문초를 받아야 했다. 이어 그해 9월 15일 반역죄로 사형이 선고돼 이튿날 새남터에서 목이 베어져 군문에 내걸렸다.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이었다.

이에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김대건 신부가 감옥에서 처형장으로 끌려간 경로를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로 명명, 해마다 순교자 성월이면 도보순례를 진행한다. 그 치명 길은 서울 우포도청 터(현 서울 종로 광화문우체국 앞 화단)에서 서소문 밖 네거리 성지→당고개성지→새남터성지→절두산 순교성지를 잇는 12.7㎞ 코스다. 때로 절두산성지를 먼저 들른 뒤 치명 터인 새남터 순교성지에서 순례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순서를 바꾸기도 하지만, 순례 코스를 보면 새남터성지에 먼저 가고 절두산 성지에서 마무리하는 게 낫다. 다만 16일에 ‘임 가신 길, 임 따라 걷는 길’을 주제로 진행된 김대건 신부 치명 순교길 순례는 절두산성지 순례를 하지 않고 새남터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일정으로 마무리했다. 올해 순례는 특히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소수로 팀을 꾸려 순례를 진행했다. 동료 사제였던 ‘최양업 토마스’, 서품 뒤 귀국길에 동행했던 ‘현석문 가롤로’, 우포도청에서 김 신부에게 감화돼 세례를 받은 ‘임치백 요셉’, 김 신부의 시신을 업고 미리내까지 옮겼던 ‘이민식 빈첸시오’ 등 4개 팀으로 나눠 걸었다. 김대건 성인의 벗들과 함께 영원한 삶으로 가는 길에 동행한다는 의미였다.

김대건 신부가 처형에 앞서 걸었던 치명 길은 이제 도심 속 한복판, 아스팔트 포장 길이다. 옛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175년 전 걸었던 치명 길에 서서 스물여섯 살의 그 젊은 사제는 어떤 마음으로 죽음의 길을 걸어갔을까, 헤아려보는 건 그래도 조금이나마 가능하다. 김대건 신부의 스물한 번째 서한, 곧 마지막 회유문을 통해서다.

“할 말이 무궁한들, 어찌 지필로 다하리. 그친다. 우리는 미구(未久, 머지않아)에 전장에 나아갈 터이니, 부디 착실히 닦아 천국에 가 만나자. 마음으로 사랑하여 잊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너희는 이런 난시를 당하여 부디 마음을 허실히 먹지 말고 주야로 주우(主祐, 주님의 도우심)를 빌어, 삼구(三仇, 세속ㆍ육신ㆍ마귀)를 대적하고 군난을 참아 받아, 위주 광영하고 여등(汝等, 너희)의 영혼 대사를 경영하라.…”

서한 곳곳에는 신자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하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 그분과 함께 천상 예루살렘,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남아있는 신자들의 신앙에 대한 걱정이 더 큰 듯하다. ‘심연과도 같은’ 그 신앙의 깊이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그래서 순교는 은총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가 보다.

치명 길에서 만난 서울대교구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영성 담당 이형전 신부는 “김대건 신부님을 포함해 우리의 신앙 선조들께서는 당신들이 공부해 배운 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까지 하고 나야 진정으로 배운 것이라고 여기셨고, 그러다 보니 순교까지 하신 것”이라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배운 것을 실제로 적용하는 것이 순교정신을 진정으로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김대건 신부님의 치명 길을 걸을 때면, 그 걸음걸음마다 배운 대로 신앙을 실천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일상의 악습을 끊어버리지 못했던 것을 성찰하며 걸으시기를 바란다”면서 “그래야 우리는 순례를 통해 하느님 은총을 온전히 누리게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오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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