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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행 경비 지원 등 선교사들 도와준 중국 교회 주교들

조선행 경비 지원 등 선교사들 도와준 중국 교회 주교들

[신 김대건·최양업 전] (25) 1840년 전후 중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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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 발행 [1635호]


이번 호부터 몇 회에 걸쳐 신학생 김대건과 최양업이 교황 파견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로 개척을 위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김대건ㆍ최양업이 신학생으로 선발된 때부터 프랑스 군함을 타고 중국 땅을 밟을 때까지가 제1장이라면, 지금부터 연재하는 두 조선인 신학생들의 조선 입국로 개척 활동은 연재물의 제2장에 해당한다. 시기로는 1842년 10월 남경교구장 서리 베시 주교의 도움으로 요동으로 항해할 때부터 1844년 12월 최양업ㆍ김대건의 부제 서품식까지이다.

최양업ㆍ김대건의 조선 입국로 개척 활동을 본격적으로 연재하기에 앞서 이번 호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이 시기 중국 교회의 상황을 소개한다. 중국의 여러 교구와 대목구, 주교와 사제들, 지명 등이 앞으로 계속해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필자의 부족한 글을 거듭 고쳐 읽어주시길 청하는 마음으로 간략히 1840년대 중국 교회 상황을 정리했다. 이 글은 조현범(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논문 ‘중국 체류 시기 페레올 주교의 행적과 활동’(수원교회사연구소 「교회사학」 5호)과 「조선의 선교사, 선교사의 조선」, 「브뤼기에르 주교 여행기」, 「브뤼기에르 주교 서한」,「앵베르 주교 서한」, 「페레올 주교 서한」, 「중국 천주교 순교사」(서양자 수녀, 도서출판 순교의 맥) 등을 참조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당시 중국 교회는


중국에 처음으로 교구를 설정한 이는 알렉산데르 8세 교황(재임 1689~1691)이다. 그는 1690년 4월 10일에 북경ㆍ남경ㆍ마카오교구를 설정했다. 북경교구는 황하 이북 지역(감숙, 섬서, 산서, 하남 일부), 북경과 그 인근 지역(직예, 산동, 요동, 타타르, 조선)을 관할했다. 남경교구는 황하 이남 지역(사천, 귀주, 호북, 호남, 강서, 복건, 절강, 강소, 안휘)과 남경 일대를 관할했다. 마카오교구는 마카오와 중국 남부 광서ㆍ광동 지역, 북베트남 통킹 지역을 관할했다. 1838년 이전까지 중국에는 이 세 교구뿐이었다.

알렉산데르 8세 교황 재임 당시 아시아 지역 교구의 관할권과 주교 임명권은 선교 보호권 ‘토르데시야스 조약’(1494년)에 따라 포르투갈 국왕에게 있었다. 그래서 중국의 북경ㆍ남경ㆍ마카오교구 주교들은 모두 포르투갈인들이었다.

알렉산데르 8세 교황의 후임인 인노첸시오 12세 교황(재임 1691~1700)은 중국 교회를 재편성했다. 북경ㆍ남경ㆍ마카오교구의 관할을 축소하고 산서ㆍ사천ㆍ복건대목구를 새로 설정했다. 북경교구는 산서대목구와 분리돼 북경과 직예, 산동, 요동, 타타르, 조선만을 관할하게 됐다. 산서대목구는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가 담당했다. 남경교구는 기존 지역 대부분을 상실하고, 강남과 하남 지역만을 관할했다. 남경교구로부터 분리돼 신설한 사천대목구는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가, 복건대목구는 파리외방전교회가 관할하다 1729년부터 이탈리아와 스페인 도미니코회가 담당했다. 마카오교구는 광동ㆍ광서 지역만 담당하고, 북베트남 지역에는 파리외방전교회가 관할하는 통킹대목구를 설정했다.

이처럼 교황청은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에서의 포르투갈 선교 보호권를 축소시키기 위해 대목구를 설정해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수도회에 관할 책임을 맡겼다. ‘선교의 교황’이라 불릴 만큼 이방인의 선교에 관심이 컸던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재임 1831~1846)은 1831년 조선대목구를, 1838년에는 만주ㆍ절강ㆍ호광대목구를, 1839년에는 산동대목구, 1840년에는 운남ㆍ몽골대목구, 1841년에는 홍콩지목구를 설정했다. 이로써 북경과 남경교구는 ‘직할서리구’에 불과할 만큼 교구가 축소됐다.





조선에 호의를 베푼 중국·몽골·만주 교회 주교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를 시작으로 조선에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육로를 통해 조선을 입국할 때에는 앞서 언급한 중국의 신설 대목구 대부분의 관할 지역을 거쳐야만 했다. 그래서 해당 지역 교구장의 허가와 편의가 있어야만 여행할 수 있었다.



복건대목구장 카르페나 디아스 주교

▲ 디아스 주교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1840년대까지 조선 선교사들에게 도움을 준 중국 교회 주교들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복건대목구장 카르페나 디아스(Carpena Diaz, 1760~1849) 주교를 떠올리게 된다. 그는 스페인 도미니코회 선교사 출신으로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입국을 위해 마카오에서 복건에 왔을 때 환대해줬다. 그는 또 모방과 샤스탕 신부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훗날 제3대 조선대목구장이 되는 페레올 신부가 1840년 4월 36일간의 항해 끝에 복건성 장주부에 기항했을 때도 관할 구역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연락원들까지 합쳐 14명이나 주교관에서 묵었습니다. 그중 몇 사람은 여러 달을 거기서 지냈습니다. (디아스) 주교님은 너그럽게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공급해 주었습니다. 또 우리가 안전하게 여행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에게만 너그러움을 보여준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앞서 가고 우리를 뒤따라온 선교사들에게도 같은 도움을 주었고, 그들에게 자기 대목구를 지나가도록 초대하기까지 하였습니다.”(「브르기에르 주교 여행기」 99쪽, 한국교회사연구소)



라모ㆍ릿졸라티ㆍ살베티ㆍ베시 주교


▲ 라모 주교

▲ 릿졸라티 주교

▲ 살베티 주교



1840년대 전후 절강대목구장은 프랑스 라자로회 출신 라모(Rameaux, 1802~18450) 주교였다. 강서에 위치한 호광대목구는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릿졸라티(Rizzolati, 1799~1862) 주교가 대목구장으로 사목했다. 호광대목구 북쪽이자 북경교구 서쪽에 자리한 산서대목구는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살베티(Salvetti, 1769~1843) 주교가 대목구장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이들 네 주교는 모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에게 호의적이었다. 특히 산서대목구장 살베티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와 앵베르 주교의 조선 입국을 도와 조선 국경까지 길 안내인을 내어주고, 여행 경비도 빌려줬다.

“프란치스코회원인 이 존경하올 노인(살베티 주교)은 저를 사랑으로 환대하였습니다. 제가 이 지방에서 유숙하게 될 때마다 선교 사제들과 신자들이 온갖 정성을 다해 환영해 주었으니 인자하신 하느님께서 저를 위해 이들에게 갚아주소서.”(앵베르 주교가 1837년 10월 10일 교황청 포교성성 장관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산동대목구장이며 남경교구장 서리인 베시(Lodovico Maria dei Conti Besi, 1805~1871) 주교의 환대도 빼놓을 수 없다. 베시 주교는 세실 함장에게 버려져 오갈 때 없이 곤경에 빠진 메스트르 신부와 김대건뿐 아니라 만주로 떠날 예정이던 브뤼니에르 신부와 최양업을 도와 거처를 마련해주고, 요동 백가점까지 이들이 갈 수 있도록 배를 제공해줬다. 또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도 베시 주교의 집에서 4일간 신세를 졌다. 베시 주교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을 방해하던 남경교구장이며 북경교구장 서리인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가 1838년 11월 사망한 뒤 1839년 산동대목구장 겸 남경교구장 서리로 임명됐다. 포르투갈은 선교 보호권을 내세워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 후임자로 남경교구장 주교로 미란다 신부를, 북경교구장 주교로 카스트로 신부를 교황에게 추천했다. 하지만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포르투갈 국왕의 추천을 거부하고, 베시 주교를 임명한 것이다. 또 교황은 카스트로 신부를 북경교구장이 아닌 직예대목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카스트로 신부는 교황의 명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북경교구 총대리 자격으로 교구장 서리직을 수행했다. 이에 교황은 1840년 몽골대목구장으로 임명한 프랑스 라자로회 물리 주교를 1846년 북경교구장 서리 겸 직예대목구장으로 임명했다. 사태가 이렇게 흐르자 카스트로 신부는 물리 주교의 재치권을 인정하고 1846년 북경을 떠났다.



몽골대목구장 물리 주교

▲ 물리 주교


서만자를 기반으로 한 몽골대목구장 물리(Jo seph-Martial Mouly, 1807~1868) 주교는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뿐 아니라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서 조선대목구로 가는 선교사와 선교 경비뿐 아니라 각종 문서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줬다. 특히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신학생의 마카오 유학길에 도움을 주는 등 조선 교회에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만주대목구장 베롤 주교

▲ 베롤 주교


마지막으로 만주대목구장 베롤(Verrolles, 1805 ~1878)주교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출신인 그는 1838년 초대 만주대목구장이 된다. 그는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와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의 주교 서품식을 주례했고, 조선 선교사의 임시 거처를 소팔가자 교우촌에 마련해 김대건·최양업이 신학 공부를 하고 부제품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아울러 그는 김대건ㆍ최양업ㆍ메스트르ㆍ프티니콜라ㆍ푸르티에 신부의 조선 입국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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