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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자’로 그려낸 따뜻한 기억… 한부열 작가가 전하는 행복

‘30㎝ 자’로 그려낸 따뜻한 기억… 한부열 작가가 전하는 행복

[타인의 삶] <5>자폐 장애인 작가 한부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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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 발행 [1635호]
▲ 작가가 그림을 완성한 후 들어보이고 있다.



“행복했던 기억이 있으세요?” 누군가가 묻는다면 금방 대답할 수 있을까. 누구나 행복했던 기억은 있다. 다만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다 보니 행복했던 기억들은 가슴 속 깊이 묻어뒀을 뿐이다. 힘들고 치질 때만 가끔 꺼내볼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행복했던 기억들만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자폐 장애인 한부열(요한 사도) 작가가 그렇다. 그에게는 지나온 시간, 오늘, 앞으로의 시간도 모두 행복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는 ‘타인의 삶’.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한부열 작가를 만났다.


▲ Gallery HBY 전경.



▲ Gallery HBY(경기도 남양주시 비룡로782번길 43-172) 1층 전경.




한부열의 행복제작소

하얀색 도화지에 파란색 물감으로 하늘을, 초록색 물감으로는 산을 그렸다. 빨간색과 노란색 물감으로 그린 해는 세상을 밝게 비췄다. 한 작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랬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위치한 ‘갤러리 HBY’. 이곳은 한 작가의 작업실이자 갤러리다. 또한, 가족의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갤러리 이름은 한 작가의 이름인 ‘HanBooYeol’에서 따왔다. 갤러리에 도착해서 한 작가의 어머니인 임경신(엘리사벳)씨 안내로 갤러리 안으로 들어갔다. “한부열!” 임씨가 한 작가의 이름을 부르자 한 작가가 2층에서 뛰어 내려왔다. “안녕하세요.” 한 작가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따뜻한 손, 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얼굴. 짧은 첫 만남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느껴졌다. 그렇게 기자는 한 작가의 기억 속 한 페이지가 됐다.



한부열의 하루

오전 8시. 더 늦거나 이른 법이 없다. 8시가 되면 한 작가는 어김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그는 일어나면 샤워를 하고 가족들이 있는 방을 돌며 아침 인사를 한다. 그 덕에 가족들도 잠에서 깬다. 가족들이 일어나면 한 작가는 모든 방의 침구 정리를 한다. 거실에 있는 소파의 쿠션 정리도 그의 몫이다. 그렇게 모든 정리가 끝나면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때로는 만들기를 하거나 낮잠을 자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은 그림을 그리는 데 쓴다. 작가다운 일과다.


▲ 작가가 자신의 작업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세상과의 거리 ‘30㎝’

한 작가의 책상에는 신문지와 펜, 그리고 30㎝ 자가 놓여있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래서 곳곳에는 신문지와 펜, 30㎝ 자가 있다. 이런 도구들을 쓰기 시작한 시기와 이유 등은 알 수 없다. ‘언젠가부터’가 적절한 대답일지 모른다.

한 작가는 신문지에 그림을 그린다. 작품을 제작할 때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만, 평소 그리는 그림은 신문지 위다. 그의 작품들도 신문지에 그린 그림에서 나왔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펜과 30㎝ 자를 쓰는 것도 한 작가만의 특별함이다. 어머니 임씨는 “30㎝ 자를 쓰는 것은 자폐의 특징인 강박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 작가에게 30㎝ 자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인 셈이다.



38년의 기억, 그림 소재가 되다

한 작가는 그림의 소재를 모두 자신의 기억에서 가져온다. 어렸을 때 누군가 자신을 안아줬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 만났던 사람들 등을 그린다. 그래서 그런지 한 작가의 작품은 풍경화가 별로 없다. 대부분 인물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린다.

한 작가는 자신의 세상 속에서 모든 것과 소통하고 있는 걸까. 숫자나 도형, 물건을 의인화해서 그리는 것도 한 작가 그림의 특징이다.

중첩으로 여러 대상을 겹쳐서 그리는 것도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여러 대상을 겹쳐서 그리는데도 그림을 그릴 때 수정하거나 다시 그리는 법이 없다.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채 펜과 30㎝ 자를 이용해 한 번에 그림을 그린다.

어머니 임씨를 통해 한 작가에게 그림을 한 점 부탁했다. “부열아 이거 그려볼까?” 그림 한 점을 보여주자마자 한 작가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닌데도 그는 망설임이 없었다. “예쁘게 그려요.” 한 작가가 흥얼거리며 그림을 그려 나갔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어느새 보여준 그림과 같은 그림이 완성됐다.


▲ ‘성모님과 아기예수님’ 작품.



▲ ‘안아줘요’ 작품.



한부열이 있기까지

“지금은 이렇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지만 힘들었던 순간이 더 많았을 수도 있어요.”

한 작가 뒤에는 항상 어머니 임경신씨가 있었다. 한 작가는 3살 때 자폐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 임씨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그 이상을 했다. “3~4살 때 사진을 보면 부열이가 종이 위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는 사진이 있어요. 종이를 깔아놓으면 위에 앉아서 그림을 그렸거든요. 그림을 그릴 때면 강박증세가 없어지고 집중을 했어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쉽지 않은 탓에 임씨는 아들에게 그림 교육을 할 수는 없었다. 그저 아들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할 뿐이었다.

임씨는 아들과 초등학교도 함께 다녔다. 1학년 때 만난 선생님의 도움으로 임씨는 4년간 아들과 함께 학교에 다녔다. 남편의 사업으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살았던 적도 있었는데, 당시 한국국제학교 교장 선생님의 도움도 컸다. 특수교육이 부전공이었던 교장 선생님은 한 작가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재능을 일깨워줬다. 임씨는 남편 사업으로 인해 11년간 중국생활도 했다. 이후 2012년 임씨는 아들과 함께 한국에 돌아왔고 한 작가는 2013년부터 작가로 새롭게 태어났다.


▲ 한부열 작가(왼쪽)와 어머니 임경신씨.



하느님의 이끄심

한 작가는 2013년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하며 ‘우리나라 공식 첫 자폐인 라이브 드로잉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2014년 중국 청도에서 초대전을 열었는데 출품작이 완판됐다. 임씨는 판매 수익 전액을 심장병 어린이를 위한 수술비로 기부했다. 지금도 임씨는 한 작가가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통해 얻은 판매 수익은 전액 기부한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이끄심과 도움 덕분이죠. 부열이가 얻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많이 기부해요.” 임씨는 익명으로 장애인 단체에 기부하거나 발달장애인 작가들을 후원하기도 한다.

임씨에게 한 작가의 꿈에 대해 물었다. “부열이 꿈이 제 꿈이겠죠. 장애를 가진 작가지만 그림에는 장애라는 말이 쓰여 있지 않잖아요. 저는 부열이가 누가 봐도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이 부열이 그림을 보면서 ‘좋다’, ‘따뜻하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이요.”

“부열이는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저는 부열이를 아들이 아닌 한 몸이라고 생각해요. 부열이가 나이가 들면서 혼자 할 걸 생각해서 갤러리를 마련했는데 앞으로 부열이가 독립할 수 있게 많은 것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기겠습니다.”

한편, 한부열 작가는 11월 3일부터 30일까지 Gallery HBY(경기도 남양주시 비룡로782번길 43-172)에서 갤러리 오픈 후 첫 개인전을 연다. 전시 주제는 ‘비상’이다. 새로운 시작, 새롭게 도약한다는 의미다. 작품 60여 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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