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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시월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한 소녀

[독자마당] 시월의 마지막 밤을 함께 한 소녀

전혜순(비비아나, 춘천교구 솔올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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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7 발행 [1636호]



소중한 인연이 있습니다.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3일 동안 진행되는 개강 OT에 참석하라는 문자를 받고 많이 망설였습니다. 용기가 없어 빠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전체 필참이기에 피할 수 없었습니다. 첫날, 어색함을 깨기 위한 이벤트 진행자의 목소리는 요란한 음악과 함께 하이톤으로 올라갔습니다. 어느새 실내는 흥분의 도가니로 바뀌었습니다. 맨 뒤에 서서 쑥스러워하는 나에게 지원 나오신 수녀님이 다가와 제 팔을 붙잡고 춤을 유도했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춤을 잘 추시는 수녀님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 열정에 조금씩 따라 움직였습니다.

과별로 퀴즈가 주어졌고 마지막으로 밖에 나가 단체 줄넘기를 열 번 성공하고 들어오는 팀이 우승하는 미션이었습니다. 문제는 줄넘기였습니다. 저는 의욕 과잉으로 잠시 나이를 잊었습니다. 몸은 예전 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도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다리에 계속 걸려 처음부터 다시 뛰기를 반복하다 발목을 삐고 말았습니다. 굳이 뛰지 않아도 되는데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다음날도 이어지는 일정에 맞추어 강당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옆에 와서 팔짱을 끼며 말했습니다. “자매님 괜찮으세요?”

자매님이란 소리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같은 과 동기였습니다. 얼굴엔 착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서로 팔짱을 끼고 계단을 오르는데 마치 예수님께서 보내 주신 천사와 걷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가브리엘라는 천사였습니다. 인연은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가브리엘라는 학교 성당에서 전례를 담당하며 가톨릭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성소는 어릴 적부터 꿈꾸어 온 것처럼 그 마음이 단단해 보였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조용하게 생활 속에서 수녀님처럼 그렇게 실천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대학 4년 동안 가브리엘라와 함께한 소소한 추억이 참 많았습니다. 학교 성당 미사 시간에 함께하고 국수집에서 수다를 먹던 일, 서울 성북동 답사를 가던 일, 과제를 함께 하며 무엇보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하루 탈출을 감행한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책갈피에서 나뭇잎 한 장이 곱게 쓴 글씨와 함께 떨어졌습니다. 노란 나뭇잎에는 예수님 말씀, 스며들어 지울 수 없는, 지워지지 않는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 5) -2018년 시월의 마지막 날 비비안나 자매님께, 가브리엘라.

가브리엘라는 눈이 많이 내리던 2021년 3월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지금 열심히 수련 생활하고 있겠죠. 하루하루 행복한 수련 생활 이어가리라 믿어요. 가브리엘라를 뽑아 가신 예수님이 밉지만 언제나 기도 안에서 만날 수 있기에 날마다 기쁨입니다.

가브리엘라 수녀님, 언젠가 만날 날을 기다리며 노란 나뭇잎이 외롭지 않게 날마다 기도할게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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