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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대신 나를 데려가 죽이시오”

“저 사람 대신 나를 데려가 죽이시오”

[미카엘의 순례일기] (43)위령 성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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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1 발행 [1638호]
▲ 정만영 콜베 신부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바라보며 성 콜베 신부의 생애를 묵상하고 있다.



11월은 교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달이며, 세상을 떠난 이들, 특히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연옥 영혼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위령 성월’입니다. 첫날은 ‘모든 성인의 날’이며, 둘째 날은 ‘위령의 날’이지요. 해마다 우리는 이 시기에 하느님 품으로 먼저 가신 부모님과 친척을 비롯하여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순례를 떠나면 가장 많이 만나는 것은 무덤입니다. 우리 교회의 권위와 정통성을 드러내는 바티칸 교황청이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져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무덤 앞에서 죽음을 묵상하며 동시에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고 돌아갑니다. 수많은 관광객이 화려한 대성당의 면모에 감탄하고 있더라도, 순례자는 대성당 지하에 자리한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침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순례지 중에는 때로 피하고 싶은 곳도 있습니다. 온통 악으로 가득한 장소에서도 사랑의 불꽃을 피우려 애썼던 고달픈 성인의 삶을 좇아갈 때 만나는 장소가 그러한데, 대표적인 곳이 바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입니다.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멀지 않은 오시비엥침에 자리 잡은 이 유명한 수용소는 원래 폴란드 군대의 막사로 지어진 단순한 벽돌 건물이었지만, 2차 세계대전 때에 폴란드인과 유다인을 포함해 약 600만여 명 정도가 살해된 나치 최대의 강제수용소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단장되어 있으나 여전히 그곳에 들어서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수감자들이 마주했던 바로 그 입구에 들어서면 나치 장교의 손가락에 따라 왼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분류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왼쪽은 목욕탕, 그러나 실은 가스실이며 바로 옆에는 곧장 화장터가 있습니다. 오른쪽은 강제 노역장입니다. 일할 수 있을 만큼은 건강해 보였다는 뜻이지만, 그들 역시 매일 빵 280g과 수프 한 국자로 연명하며 살다 보면 두어 달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밖에 모든 참혹함을 형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주님을 닮은 사랑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1년 여름의 일입니다. 그해 7월 말, 누군가 지옥 같은 수용소를 탈출했습니다. 독일군은 탈옥수 한 명당 남은 이들 열 명을 골라 굶겨 죽였습니다. 무작위로 뽑힌 열 명 중 한 남자가, 자신에게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며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함께 있던 수감자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습니다.

“내게는 아내도, 아이도 없소. 그러니 저 사람 대신 나를 데려가시오.”

폴란드인이었으나 유대인을 도왔다는 이유로 비밀경찰에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신, 이제 ‘사랑의 순교자’라 불리는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님이셨습니다. 놀랍게도 신부님의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나머지 아홉 사람과 함께 감금되었습니다. 그 당시 ‘아사 감방’을 담당했던 간부는 기록하기를 “그와 같은 방 안에 있던 이들은 함께 묵주 기도와 성모송을 바치며 죽어갔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내일 천국에 계실 것입니다.” 신부님은 다른 이들에게 매일 그렇게 말씀하시며, 무려 2주 동안이나 생존하셨습니다. 결국, 독일군은 신부님을 끌어내어 독극물을 주사했습니다. 그때 신부님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 남자는 끝까지 살아서 그곳을 나왔고, 사랑하는 가족을 다시 만났으며, 이후 1995년 사망하기 전까지 매년 신부님의 기일에 아우슈비츠를 방문해 꽃을 바쳤다고 합니다.

콜베라는 세례명을 가진 신부님과 함께 아우슈비츠를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내내 울 듯한 얼굴이셨습니다.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서로를 껴안고 잠들었던 막사, 총알 자국이 가득한 처형장, 철조망의 끝에 있는 가스실과 화장장…. 가스실 위에는 독가스 병을 따고 아래로 던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작은 철문이 보였고, 그 옆 화장터 위로는 거대한 기둥이 햇살을 받으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춘다는 것,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진정한 사랑은 드러나는 법이라는 것, 죽음보다 위대한 사랑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이제서야 알 것 같아. 어떤 사람들은, 고통과 고난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삶을 살아갈 때조차 다른 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못하는 거야.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다 이루었다고 느끼셨던 이유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 이곳을 순례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

콜베라는 세례명이 항상 무겁게 느껴지셨다는 신부님께서는 사랑이 참 많으신 분입니다. 그날 이후부터 신부님께서는 더 많은 사랑을 베풀며 살고 계시는 듯합니다. 겨울의 초입에 다다른 11월, 우리보다 먼저 죽음을 건너간 이들을 기억하며 조금 더 많은 사랑을 베풀며 보내는 것은 어떨까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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