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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의 아이콘 마리아 막달레나 성해가 안장된 곳

회개의 아이콘 마리아 막달레나 성해가 안장된 곳

[미카엘의 순례일기] (44) 영원의 언덕, 베즐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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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발행 [1639호]
▲ 프랑스 베즐레에 자리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대성당.



수년 전, 일본 상지대학교에서 철학과 전례를 가르치시는 예수회 신부님과 함께 프랑스 순례를 떠났습니다. 일정을 전부 맡겨주셨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평소보다 조금 더 어렵고 신중했습니다. 조선의 두 번째 주교이셨던 성 엥베르의 생가를 비롯해 르 토르네 수도원, 라살라트 성모 발현지, 아비뇽, 퐁트네 수도원, 몽쉘 미셸을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곳, 오랜 역사와 순례의 중요성에 비해 점차 잊혀져가는 베즐레(Vezelay)를 포함시켰습니다. 위치도 애매하고 마을도 너무 작아 순례단이 방문하기에 썩 편리하진 못하지만, 교회 역사에서 무척 의미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번에 꼭 순례 일정에 집어넣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낯설고 생소한 이름이나, 베즐레는 한때 세계의 중심으로 불릴 만큼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2차, 3차 십자군이 모두 이곳에 모여 출발했을 정도였지요. 1190년,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와 프랑스의 존엄왕 필립은 베즐레에서 만나 “십자군 원정 동안은 두 나라 간의 갈등을 버리고 서로 필요할 때 원조하며 경건한 신앙 안에서 행동할 것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 명이 죽으면 다른 한 명이 죽은 왕의 군대를 책임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두 배의 노력을 기울이기로” 서약하기도 했습니다. 베즐레가 이토록 중요한 장소가 된 것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성해(聖骸)가 이곳에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죄 많은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 ‘완전한 회개’를 이루신 성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이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 이후, 유다인에게 쫓겨 성 막시망과 함께 돛도 노도 없는 쪽배로 바다 위에 내던져진 성녀께서는 풍랑에 시달린 끝에 지중해를 가로질러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성녀는 프로방스 지역의 수호 성인이시기도 합니다. 두 분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셨는데, 특히 성녀께서는 20년이 넘도록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하셨으며 전승에 따르면 자기 죽음을 예감하신 날 동굴에서 내려와 성 막시망에게 마지막 영성체를 받아모신 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성 막시망은 라 생트 보메(la-Sainte-Baume)에 성녀를 안장했는데, 지금 그곳에는 성녀를 기억하는 성당이 봉헌되어 있습니다.

이후 860년에 성녀의 성해가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 평원에 솟아있는 베즐레 언덕 위로 옮겨지게 되었고, 대성당을 지어 봉헌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언덕은 ‘성령이 머무는 언덕’ 또는 ‘영원의 언덕’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많은 이들이 성녀의 유해를 참배하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까미노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경유지도 바로 이 언덕이었습니다. 하지만 14세기 말부터 시작된 백년전쟁으로 인해 베즐레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고, 훗날 이어진 프랑스대혁명 때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지금은 고작 인구 400여 명의 작디작은 마을로 전락했지요.

그러나 이 모든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성 마리아 막달레나 성당만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 19세기에 일부 복원된 부분이 있지만, 로마네스크 양식의 이 성당은 당시 지어진 모습 그대로 순례자를 맞이합니다. 대성당은 순례 성당으로 지어져 전례 중에도 순례자가 성당 내부를 돌며 기도할 수 있으며, 나르텍스(Narthex, 성당 내부의 회중석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을 정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장소)도 아주 크게 지어져 있습니다. 물론 이 대성당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제대 아래쪽 경당에 모셔진 성녀의 성해실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순례자의 발자국과 기도의 자취가 남겨진 이곳에서 우리도 미사를 봉헌하기로 계획했음은 물론입니다. 대성당 한쪽에 마련된 경당에 예약된 시간에 맞춰 도착하니, 봉사자 한 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대 위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또한, 제의도 제병도 포도주도 없었습니다. 당황해 하는 우리를 향해 봉사자는 “자신은 그저 경당 문을 열어줄 수 있을 뿐이며 미사를 위한 제구, 제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기로 예약을 했는데 미사 준비를 해줄 수 없다니? 처음 겪는 일이었던 데다, 저의 추천으로 일정에 넣었던 장소라서 더욱 당황스러웠습니다. 순례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해 주셨지만 아쉬운 마음은 감추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제대 앞에서 잠시 골똘히 생각하시던 신부님께서 갑자기 모두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여기서 미사를 드리기로 하죠!”

<계속>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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