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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0. 기다림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0. 기다림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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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5 발행 [1640호]
어린 시절 나는 아주 작은 섬에서 살았다. 정말 작은 섬이라 이웃집에 일어나는 일들을 서로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부두에서 배를 타고 3시간 이상을 들어와야 했던 때였고 배는 하루에 단 한 번밖에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섬에는 국민(초등)학교가 있었다. 어린 내 눈에 우리 학교는 엄청나게 큰 세계로 다가왔다. 학교에는 학년별로 선생님들이 계셨는데 선생님들은 모두 사택에서 머무셨다. 그래서 토요일이면 육지로 나가셨다가 주일에는 섬으로 돌아오셔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에 우리는 으레 왼쪽 가슴에 하얀 손수건을 달고 다녔는데, 지금도 자연스럽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우린 아마 습관이 될 만큼 매일 이 행동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1학년들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 우리는 정말 ‘코찔찔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골 촌구석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뛰어놀았겠는가? 우린 정말 노는 게 재미있었다. 이런 우리에게 외지에서 오신 선생님들은 정말 특별한 분들이었다. 우리와 다르게 얼굴도 하얗고, 옷매무새나 말씨도 세련되며, 우리 섬과 다른, 도시 세계를 이야기해줄 수 있는 분들이었다. 당시에 나는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다가왔었다. 부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담임 선생님께서 초코파이를 하나씩 나눠주셨는데 그것이 얼마나 낯선 음식이었던지 나는 한참 뒤에 익숙해져서야 초코파이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외지 음식에도 낯을 가리는 ‘깡촌’ 이다 보니, 매주 월요일 초코파이를 주시던 선생님이 우리 눈에는 정말 대단하신 분으로 다가왔다. 우리끼리는 이런 소문도 돌았었다. “선생님의 아빠가 초코파이 공장을 하신대.” “아, 그래서 초코파이를 매주 가져오시는 거구나!”

정말 기다려지는 월요일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초코파이를 받을 수 있는 월요일보다도 선생님께서 섬으로 들어오시는 주일이 더 좋았다. 우리는 아예 선착장으로 가서 여객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곤 하였다. 한참을 놀다 보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와! 저기 배 들어온다!”라고 외친다. 그러면, 우리는 모두 배가 닿을 돌다리로 달려가서 선생님을 맞이하였다. 배에서 내리실 때, 우리를 보시던 선생님의 환한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달려가는 마음은 행복하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도 마냥 기쁘다. 만나기 전부터 이미 행복하다.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은 어떤 어려움도 감수하게 하는 용기를 갖게 한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가 나를 보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면 더욱 행복해진다. 그의 얼굴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얼굴에서 본 그 환한 사랑을 오늘 나는 복음에서 발견한다. 매일 설레며 복음을 읽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벽 묵상에 들어간다.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조아리며, 그분이 말씀하시도록 귀 기울인다. 이런 내 마음은 삶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사람들과 생명들, 순간들에서 하느님의 자취를 발견하게 한다. 내 어린 시절, 누군가가 “저기 배 들어온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들리고 있다. 주님이 오실 길을 마련하라고, 그분의 길을 곧게 내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이제 부두로 나가지 않는다. 나는 이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마음 길을 곧게 하는 회개와 친교의 성사로 달려간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기다리면, 우리 주님께서 환한 얼굴로 들어오시겠지?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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