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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1. 저마다의 길에서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1. 저마다의 길에서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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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2 발행 [1641호]
겨울바람이 잦은 것을 보니 이제 깊은 겨울로 들어가나 보다. 농부에게 겨울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이듬해를 준비하는 시간이다. 수녀님들은 요즘 한창 올해 추수한 곡식을 손질하여 내년에 먹을 것과 씨앗으로 남겨둘 것을 나누어 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옛날 같으면 된박(뒤웅박)에 씨앗을 담아 창고에 매달아 놓았겠건만 이제는 잘 빠진 재활용 페트병이나 약병에 예쁘게 담아 내년에 심어질 날을 기다릴 수 있게 하고 있다. 페트병이 뒤웅박 역할을 잘하고 있다.

한때 어떤 분이 나를 보고 ‘된박이 수녀’라고 부르시곤 했는데, 사실 나는 ‘된박’이 뭔지 몰랐었다. 그래서 “된박이 뭐예요?”라고 여쭈었더니, “바가지로 쓸 수 없는 박은 구멍을 파서 씨앗이나 담게 하는 거여. 그걸 ‘된박’, ‘뒤웅박’이라고 해.” 농담인 것을 알고 나는 이렇게 되받아 말씀드렸다. “그러면 그저 물바가지로만 쓰이지 않고, 소중한 씨앗을 담을 수 있으니까 정말 소중한 이름이네요.” 그러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을 거여”라고 답하셨다. 정말 나를 놀리려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별명이 좋았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가난한 집으로 시집가면 여물을 담고 부잣집으로 시집가면 쌀을 담는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된박이 수녀’인 나는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세례로써 이렇게 따르고 있으니 부자들을 위한 양식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위한 양식을 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된박이 수녀’라고 불릴 때 나는 이렇게 질문한다. ‘나는 내 안에 무엇을 담고 있는 거지? 혹시 예수님께 걸맞지 않은 것을 담고 있지는 않나?’ 그래서 ‘된박이’는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기억하게 하는 내 내면의 이름이 되었다.

생태영성의 집에서 우리는 농사도 짓지만, 간혹 교육도 한다. 교육하면서 나는 이런 질문을 많이 들었다. “갈수록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고 있어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면 행동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시키는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은 행위를 한 것에 대한 만족으로 끝날 때가 많다. 나는 정말 긴 시간을 고민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 자신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로 시작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담아내는 된박인지를 보는 것이다. 곧 자신이 누구인지 그 정체성을 인식하고, 각자에게 필요한 행동을 스스로 찾아서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요한 세례자는 군중이 찾아와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회개의 길로써 저마다의 정체성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을 찾도록 일러준다. ‘저마다의 길에서…’ 나는 교회의 삶 안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바로 하느님을 향하는 저마다의 길이다. 사제는 제단에서 사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재현하고, 평신도는 세상 곳곳에서 살아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낸다. 된박 같은 수녀라도 자기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하여 매일 자기 삶 안에서 소중하게 펼쳐내는 저마다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너무도 다행인 것은 세례받은 모든 이들에게는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신 그 성령께서 우리와도 함께하셔서 저마다의 길을 충실히 갈 수 있도록 길을 알려주신다는 것이다. 쌀을 담는 된박이든, 여물을 담는 된박이든 제 몫을 기꺼이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재촉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오늘도 나는 쌀보다는 여물을 담아내는 ‘된박이’이고 싶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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