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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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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의 순례일기] (47)베들레헴을 순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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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발행 [1642호]
▲ 주님 탄생 동굴.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는 라틴 말이 새겨져 있다.



일찍이 예로니모 성인께서는 “순례는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유익을 위해 그리스도인이 이스라엘을 순례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일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만나는 길’이라고 정의하셨지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7㎞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베들레헴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육화(肉化)의 신비가 있었던 예수님의 탄생지입니다. 집이라는 뜻하는 ‘Beit’와 빵을 뜻하는 ‘Lehem’이 합쳐진 단어로, 직역하면 ‘빵집’이 되지요. 팔레스타인의 자치지구 중 하나인 이곳은 1940년대만 해도 주민의 95%가 가톨릭 신자였으나 현재는 무슬림이 85%에 이릅니다. 매주 금요일 12시가 되면 주님 탄생 대성당과 마주한 광장에 베들레헴에 거주하는 수많은 무슬림이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하루에도 여러 번씩 베들레헴 전체를 울리는 아잔(모스크에서 울리는 기도시간을 알리는 목소리)소리가 가득히 울려 퍼집니다.

베들레헴 순례를 손꼽아 기다리던 한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풍요롭고 가슴 벅찬 갈릴래아도, 쏟아지는 뜨거운 햇살 아래 걸었던 광야의 시간도 그분에겐 단지 베들레헴 순례를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사탕을 나눠준다는 말을 듣고 왔다가, 마당에 서 있는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에 반해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던 자매님께서는 환하게 성당을 밝히는 그 아름다운 모습이 가난했던 시절의 유일한 희망처럼 느껴지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베들레헴을 순례하기 시작하자, 자매님의 얼굴은 점차 굳어져만 갔습니다. 목동들의 들판, 수유 동굴 성당(The Milk Grotto Church), 주님 탄생 대성당,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 성당, 지하의 여러 동굴 경당을 순례하고, 성녀 헬레나 경당에서 성탄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에도 자매님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습니다.

“성탄의 기쁨은 어디로 간 거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한 베들레헴이라니…. 어릴 때부터 내 삶에 희망을 주었던 그 성탄의 불빛이 베들레헴에서는 더 크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아. 미카엘이 이스라엘을 순례하면서 실망할 수도 있다고, 거룩한 성지라는 이미지에 너무 큰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과는 너무 달라.”

주위의 몇 분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셨습니다. 저는 크게 낙담하신 자매님과 다른 분들께 저 또한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충격이 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곳이 이렇게 지저분하고 소란스럽고 종교적인 문제가 많은 곳인지는 상상도 못 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살면서, 그리고 순례를 자주 오면서 육화의 신비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느끼게 되었고, 어쩌면 이런 모습이야말로 예수님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성지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하게 돼요. 잘 가꾸어진 거대한 성당 안에서 고요하게 묵상할 때 찾아오는 깨달음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처럼 민족 간의 갈등이 첨예하고, 서로 다른 종교적 긴장감과 나라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위태로운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상황을 이해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가난함을 자주 언급하지만, 정작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어요.”

예로니모 성인이 말씀하셨듯, 우리는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좀 더 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완전함’을 예수님께 투영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예수님을 인간이 아니라 천사인 것처럼 생각하며, 우리와는 전혀 닮지 않은 인간 이상의 존재로만 인식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나셨음을 고백하면서도, 우리는 인간의 약함을 함께 가지신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하는 경우가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육화의 신비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 가진 약함과 한계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하느님의 허락과 다름없다고 저는 믿습니다. 베들레헴은 그러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저는 그래서 베들레헴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의 첨언이 자매님의 낙담을 다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많은 순례자가 이처럼 이스라엘을 처음 만나고는 실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고 돌아가신 바로 그곳이니, 어쩌면 당연한 기대와 실망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화려하고 성대한 축제가 아닌 어지럽고 지저분하며 소란스러운 혼란 속으로 직접 내려오시기를 원하셨고, 정말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성탄이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예수님께서는 다름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형상으로, 그것도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낡은 마구간의 구유에 내려오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며 기뻐하는 것은 어떨까요?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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