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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하느님의 집’ 복구는 인간 정체성 회복에서 시작

무너진 ‘하느님의 집’ 복구는 인간 정체성 회복에서 시작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4. 하느님의 구원경륜① - 인간의 정체성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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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발행 [1642호]
▲ 인간이 하느님의 집을 복구하가 위해서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 미켈란젤로, ‘아담의 창조’(시스티나 성당의 천장 벽화 ‘천지창조’ 중),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소장.



지난 연재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무너진 집에 대한 복구는 우선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으로서 영과 육을 잘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의 정체성이 회복돼야 하느님의 집이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사회 공동체가 상생의 집이 될 수 있도록 돌보는 사명과 지구환경이 훼손되지 않고 모든 생명체가 그 안에서 건강하게 번성할 수 있는 집(생태계)이 되도록 돌보는 사명 또한 잊지 말아야 한다.



정체성은 한 인격체로 살아가게 하는 핵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 가지 차원의 집에서 가장 중요하고 토대가 되는 것은 ‘하느님의 집’으로서 인간생태이다. 따라서 무너진 집에 대한 복구는 인간생태의 복구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생태를 어떻게 복구해 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해법은 인간의 정체성 회복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나는 누구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성찰하지 않고 살아지는 대로 살아간다. 요컨대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인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인간의 참된 정체성이 형성되지 않거나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인간은 한 인격체로서 바로 설 수 없다. 우리에게 참된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은 생명체의 최소단위인 세포에서의 핵이 기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을 한 인격체로 살아가게 하는 핵심이다.

참다운 정체성 형성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하는 짧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아기 호랑이가 엄마 호랑이에게 물었다. “엄마, 나 호랑이 맞아?” 아기 호랑이의 물음에 엄마 호랑이가 “너는 호랑이가 맞다”라고 대답하지만 아기 호랑이는 확신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자기 정체성을 깨닫기 위해 길을 나섰다. 길을 떠나 코끼리 아저씨, 염소 할아버지, 곰 아주머니 등을 만나며, 자기가 호랑이가 맞느냐고 묻는다. 모두 그렇다고 대답하자, 비로소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신에 이르렀고, 기뻐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가까이 도착했을 때, 저 멀리서 엄마 호랑이가 보였다. 아기 호랑이는 엄마 호랑이에게 달려가면서 “엄마, 드디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어요!” 하고 소리치며 엄마 호랑이 품에 달려와 안겼다. 그때 엄마 호랑이가 아기 호랑이를 반기며 “장하다, 내 강아지!” 하고 아기 호랑이 엉덩이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말에 아기 호랑이는 그만 다시 자기 정체성 혼란에 빠졌다. ‘아이고, 내가 호랑이가 아니라 강아지란 말인가!’라고 되뇌며 절망에 빠져 가출했다는 우습고도 슬픈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나의 정체성이란 타인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이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 자신도 아직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상황에 따라 정체성의 혼란을 느낄 때, 부초처럼 떠다니는 인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내가 누구인지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좌표를 확실히 파악하는 것이 내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며,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고 무의미한 삶에서 벗어나게 하는 출발점이 된다. 요즘 온 세계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감염체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 자각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 안에 ‘세포의 핵’과 같이 우리 존재의 근원과 구심점에 대한 확고한 자각 없이는, 우리는 핵 없는 바이러스처럼 생명체가 못되고 이리저리 숙주를 찾아 떠돌면서 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기생하며 해를 끼치며 살아가게 된다.



하느님과 관계 안에서 참된 정체성 드러나

평소 생명살이를 하는 모든 존재의 이름이 그 존재와 어울리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가 꽃을 “꽃”이라고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꽃은 “꽃”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이 시가 암시하는 바를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겠다.

“하느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하느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하느님께로 와서 꽃이 되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심으로써 비로소 우주 만물에서 참으로 색다른 생명체인 인간 존재로서의 나의 참다운 정체성이 드러난다. 이때 우리는 무한한 자존감으로 충만해진다. 여기에서 자존감은 무엇을 소유하거나 어떤 지위가 있기 때문에 즉 자기 욕구가 채워져서 얻어지는 자존감이 아니라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놀라움에서 비롯된 자존감이요, 무상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자존감이다. 이러한 내적 자존감으로 충만해져야 외적인 것에서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나 타인의 인정에 매달리는 애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삶 속에서 진실한 모습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견뎌내며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본인에게 부여된 사명과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참된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토대이며 성경에서 말하듯이 바위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소년 예수님께서도 열두 살 때, 성전에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참된 정체성을 깨달았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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