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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하느님의 어머님’ 성모님께 대한 공경

[생활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하느님의 어머님’ 성모님께 대한 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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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발행 [1644호]
▲ 함승수 신부



천주교 교리 중에 가장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게 바로 오늘 기념하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호칭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일 뿐인 마리아를 두고 감히 전능하신 ‘하느님의 어머니’라니…. 이런 ‘신성모독’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지요. ‘천주교는 마리아를 숭배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을 보지 못하고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기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천주의 성모’라는 호칭은 마리아가 아니라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은 육으로는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신 참사람이시면서 동시에 영으로는 하느님의 섭리와 능력으로 태어나신 참하느님이시니, 마리아의 품위는 단지 ‘인간 예수’의 어머니로 그치지 않고 ‘하느님의 어머니’로까지 들어 높여지는 것이지요. 이는 성경에도 기록된 진리입니다. 친척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

우리는 손가락이 가리키는 하늘을 바라봐야 합니다. 교회가 마리아의 어떤 모습 때문에 그분을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며 공경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리아를 ‘성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이 거룩하신 주님을 육으로 낳으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언급하셨지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르 3,35) 이 말씀은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관계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공경하신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그것을 삶 속에서 충실히 실천하신 마리아의 신앙과 삶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마리아께서는 육으로, 믿음으로, 행동으로 온전히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음을 인정하신 것이지요.

복음에서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던 근본 이유를 마음가짐에서 찾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성모님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좋고 싫음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종’으로써, 그분의 구원역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겪든 오직 주님만 바라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자기 삶에 일으키시는 일들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것이 당신 삶에 어떤 의미가 될지를 곰곰이 되새기셨습니다. 모진 비바람에도 흔들리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끝까지 따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삶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셨지요. 이렇듯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당신 자궁으로, 마음으로, 삶으로 온전히 잉태하여 낳으셨기에,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모님을 본받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하느님만 바라보고, 행동으로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온전히 실천하며, 삶으로 하느님을 이 세상에 현존케 하는 살아있는 ‘성전’이 되면 좋겠습니다. 생활 성가 ‘주만 바라볼지라’의 가사를 묵상하며 그 다짐을 마음에 새깁시다.



하느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 하느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느님께 찬양과 경배하는 자 / 하느님의 선하심을 닮아가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 너를 자녀 삼으셨네

하느님 사랑의 눈으로 /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느님 인자한 귀로써 /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 주만 바라볼지라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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