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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미카엘의 순례일기] (49)저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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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발행 [1644호]
▲ 스페인 몬세라트의 산타코바(거룩한 동굴)에서 순례자들이 서로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해 주고 있다.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호감을 느끼는 종교는 여전히 가톨릭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종교 자체에 대한 관심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전례가 중지되고 교회 활동이 숨죽이고 있는 시간이 신앙 또한 무디게 만든 것이지요. 가까운 지인께서도, 코로나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자조적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앙이 흔들리는 체험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삶 전체를 놓고 볼 때 신앙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믿음으로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파도를 보고 겁을 먹어 물에 빠지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라고 외쳤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우리는 본래 불완전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주님께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도가 바로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외침일 것입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순례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때였습니다. 밤이 깊은 시각, 형제님 한 분께서 급하게 제 방을 찾아오셨습니다. 자매님께서 갑자기 열이 올라 가져온 약을 먹였는데도 낫기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며 걱정하시기에, 함께 방으로 가 자매님을 살펴보았습니다. 정말 자매님의 온몸이 뜨겁고, 눈도 심하게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정신도 혼미하신 것 같았습니다.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아 저는 프런트에 택시를 부탁하고 올라왔는데, 소란이 들렸는지 옆 방에 계시던 신부님께서 나와계셨습니다. 형제님께서는 계속해서 찬 수건으로 자매님의 얼굴과 목덜미를 닦아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자매님께서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시더니 충혈된 눈을 부릅뜨며 두 손으로 형제님의 멱살을 잡아채셨습니다. 그리고 분노에 찬 얼굴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대체 왜 그랬어? 어떻게 십 년이 넘도록 연락도 없이, 그렇게 살 수가 있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면서 지내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어떻게 사는지조차 알려고 하질 않다니!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남편은 외국에서 일한다고 속여가면서, 본당에서 멀리 떨어진 식당만 찾아 일하며 살았어.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했고, 오로지 하느님께 나와 아들을 도와달라는 기도만 했어. 십 년을 그렇게 살았어!”

너무 깜짝 놀랄 정도로 큰소리를 지르신 탓에 같은 층에 있던 자매님들도 방문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그 누구도 자매님을 제지할 수 없었습니다. 울분을 토하듯 한참이나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던 자매님께서는 실이 끊어진 연처럼 침대에 힘없이 쓰러지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모여든 자매님들을 각자 방으로 돌려보내신 뒤, 두 분의 곁에 앉아 형제님의 손을 잡고, 또 다른 손은 자매님의 머리 위에 얹고서 조용히 축복하셨습니다. 형제님은 자매님을 조심스레 안고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셨습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십 년 넘게 가족을 버린 사람이에요.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왔을 때,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저를 받아주었는데… 이 죄를 어떻게 보속해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 밤, 신부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형제님의 고해성사를 받아주셨습니다. 다음 날 신부님께서는 이런 내용의 강론을 해주셨습니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슬픔, 또는 분노가 있습니다. 담아두기에는 너무 크고, 내보이기에는 너무 아픈 것들이지요. 그 아픔을 누구에게 말해야 할까요? 누구에게 털어놓고 한탄해야 할까요? 하느님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수많은 성인께서도 하느님을 원망하고 미워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도 십자가에 매달린 채 어째서 저를 버리시느냐고 울부짖으셨습니다. 우리도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새 삶을 살도록 도와달라고 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마십시오. 도와달라고 청하고 외치십시오. 얼마가 걸리든,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청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견뎌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채 아픔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야말로 신앙인으로서의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 즉 우리가 그분을 원망하고 부정할 때조차 그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진리가 드러나는 때입니다. 시작된 새해,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분명 있겠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도와달라’는 우리의 기도보다 강한 시련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에게는 어떤 악도 닥치지 않고 오히려 그는 시련을 당할 때마다 구원되리라.”(집회 33,1)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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