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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시사진단]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최진일, 마리아, 생명윤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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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발행 [1644호]



2020년 5월 체외수정을 통해 한 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은 아우레아(Aurea)이다. 보조생식술로 출산한 아이가 한둘이 아닌 요즘 세상에, 뭐 대수로운 일이냐고 물을 수 있다. 아우레아는 체외수정 된 후 착상되기 전 배아단계에서 미래의 건강을 예측하는 다유전성 선별검사(polygenic screening)를 통해 선별되었다.

보통 체외수정 된 배아는 착상되기 전 유전자 검사를 받는데 이는 단일 유전자 질환을 가진 배아를 선별하기 위해 시행한다. 사실 착상 전 유전자 검사도 유전자 질환뿐만 아니라 질병과 상관없이 부모가 원하는 특정 유전 형질을 가진 배아를 선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동안 우생학의 논의를 피할 수 없었다.

유전 질환은 단일 유전자에 의해 발병하기도 하지만 심장질환이나 당뇨병과 같은 질환은 여러 유전자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발생한다. 그래서 아우레아가 받은 다유전성 선별검사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보다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이 검사를 통해 배아들에게 다유전자위험점수(polygenic risk score)가 매겨지고, 낮은 위험점수를 획득한 배아만이 착상을 위해 선별된다. 아우레아 배아는 심장질환, 당뇨병 및 암에 대한 다유전자위험점수가 낮았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이미 시중 병원에서 시행되는 착상 전 유전자 검사를 통해 배아는 등급을 부여받기 때문에, 다유전성 선별검사를 통해 점수를 부여받고, 그에 따라 선별된다는 것이 특이점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 다유전성 선별검사가 보급된다고 해도 그 저항은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체외수정을 통한 배아들이 모두 등급화되거나 점수화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잠시 멈추어서 생각을 해보자. 우리는 이렇게 인간 생명을 수치화, 등급화하면서 선별해도 아무렇지 않은가?

한편 희귀한 유전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흔하게 발생하는 심장질환이나 당뇨병은 여러 유전자 사이에 발생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실 식습관, 양육, 환경도 발병에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다유전성 선별검사를 통한 예측만으로는 미래에 이런 질병이 발생할 것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런데도 착상 전 유전자 검사와 마찬가지로 다유전성 선별검사는 ‘자녀의 질병 예방’이라는 명목 아래, 정당화를 시도하고 그 적용 범위를 확대하려는 반복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생명윤리 논의에서 새로운 과학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사용되는 패턴이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난치병을 치료한다거나 자녀의 질병을 예방한다거나 등으로 말이다. 물론 목적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목적의 정당성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자명한 진리에 점점 둔갑해 지고 있다.

역설적으로 악마의 유혹은 점점 디테일해지고 있는데 말이다. 반면 우리는 그 디테일에 점점 둔감해지고 있다. 우리가 바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고 있는 탓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이유일까? 자신을 성찰해 본다. 나조차도 정작 사소한 일에 바빠서 배아들이 이렇게 수치화·등급화되는 현실에 점점 둔감해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바쁘다는 핑계로 주목해 주길 바라는 배아들의 요구에 저항하거나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미안하다. 태만이 사랑의 요구에 저항하거나 외면하는 것이라면, 이를 교정하는 덕은 사랑의 요구에 반응하는 근면함일 것이다.

새해에는 이 사랑의 요구에 반응하는 근면함의 덕을 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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