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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즐겁게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이서원, 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장)

[신앙단상] 즐겁게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이서원, 프란치스코, 한국분노관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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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발행 [1644호]



삶은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지금은 보스턴에서 공부하고 있는 신부님을 처음 만난 건 기다림을 통해서였습니다. 신부님은 수도자로서 신학대학원 상담심리학 수업을 듣는 저의 제자였습니다. 우연히 보게 된, 신부님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가는 시간, 중년의 한 남자가 오래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긴 시간 카메라를 들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 사진을 본 계기로 신부님과 도서 「보이는 마음」의 공동 저자로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수도자가 되기 전 사진작가였다는 신부님은 사진은 기다리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원하는 장면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 위해 올지 안 올지도 모를 순간을 한없이 기다리는 일이라는 거지요. 기다린다는 말이 제 마음에 콕 박혔습니다. 그 후 저도 신부님의 사진을 기다려 사진에 제 글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자전거를 탄 중년 남자의 사진에는 ‘달리는 것은 바퀴인가, 자유인가’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먹고살기 쉽지 않은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남자가 올라 달리는 자전거는 단지 바퀴가 아니라 바람과 순간순간 달라지는 풍경을 느끼는 자유를 상징하기도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신부님에게 그렇게 기다리면 힘들지 않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원하는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기약 없이 기다리는 일은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닮은 삶을 살아가기를 기다리는 일도 기약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괴로움이 아니라 즐거움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재촉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어려움과 고통을 뚫고 하느님을 내 안에 받아들이고 살아가기를 하느님께서 말없이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신부님과 사진 에세이를 함께 써나가면서였습니다. 신부님의 사진 말에 제 글 말을 다 합한 후에도 책으로 내줄 출판사를 기다려야 했고, 출판사가 정해진 후에도 출간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며 출간된 후에도 독자들을 만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늘 즐거웠습니다. 신부님이 기다리는 일은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알려준 덕분이었습니다.

신부님과 만난 이후로 인생이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이를 임신한 엄마는 아이가 나오기를 기다리고요. 세상에 나오면 앉기를 기다리고, 앉으면 서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다 학교에 가기를 기다리고, 취업하기를 기다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기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간 제 기다림은 늘 초조함과 불안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즐겁게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싶습니다. 요즘 저는 저를 즐겁게 기다립니다. 하느님 닮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저를 즐겁게 기다리고, 가족들과 성가정을 이루는 저를 즐겁게 기다립니다. 앞으로도 기다리는 일은 늘 즐거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제 속과 제 밖의 참 좋은 세상을 즐겁게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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