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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4. 새해, 사랑으로 희망하다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4. 새해, 사랑으로 희망하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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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1 발행 [1644호]
반지하 셋방부터 시작한 강화에서의 생활을 2021년 12월 31일 자로 마무리하였다. 얼마 전 새 소임을 받으면서 조금은 믿기지 않는 마음이 컸었다. 한 번도 이곳을 떠나 다른 소임을 한다는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이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소임 이동이라 어쩔 줄을 몰랐다가 “아, 성령께서 새로운 길로 인도하시는구나!”라고 마음먹으며 주님의 뜻을 구하게 되었다.

“수녀님 볼에 뽀뽀해드려”라고 하면 수줍은 듯 내게 다가 와 볼에 뽀뽀해주던 이웃집 꼬맹이 대호에게 나는 늘 “우리 대호 장가가서 예쁜 아기 낳는 것 볼 때까지 수녀님은 이곳에서 솔아랑 대호랑 살 거야”라고 말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벌써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었다.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솔아 엄마, 아빠에게 떠난다는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정말 많이 정들었고,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데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초보 농부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밥숟갈 뜨는 법을 배우는 아기처럼 그렇게 배우며 왔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모든 순간이 이웃들과 함께 엮여 빵을 나누는 사랑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장마 속에, 눈이 올 때, 바쁠 때, 농작물이 병들어 죽었을 때, 태풍에 문짝이 떨어졌을 때 나는 일단은 솔아네 집으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었다. 그러면 한밤중에라도 나와서 당신 일처럼 우리 집 일을 도와주셨다.

내가 떠난다는 말을 들으신 솔아 엄마와 아빠는 “수녀님, 가셔서 밥 챙겨 드세요”라며 떠나오는 날 농사지은 쌀 한 포를 차에 실어주셨다. 그동안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슴 깊은 데서 뜨거운 눈물이 올라왔다. 그리스도교 신자도 아니고, 혈육도 아니고, 특별한 친분으로 함께한 것이 아닌데도, 따뜻한 봄날 같은 사랑으로 함께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분들에게서 곁에 계시는 하느님의 얼굴은 바로 이런 얼굴이 아닐까 생각해왔다. 하느님에 대해 몰라서 신앙을 고백하지는 않지만, 누구보다도 기꺼운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이분들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내가 믿음을 가진다면, 성당으로 갈게요”라고 고백하는 솔아 아빠의 그 소박한 얼굴은 이미 하느님 사랑에 물든 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래가 있다. 제목은 ‘행복한 인생’이다. 가사를 보면 이렇다. “삶은 나에게도 주어지고 때로 햇살이 드리우고, 때론 견디기 힘든 시련을 만나 방황도 했었지만. 그런 나의 삶의 지금까지 가장 소중한 선택은, 진정 사랑할 사람들과 더불어 오늘을 산다는 것. 잠시 쉬어갈 순 있지만 주저앉지 말고, 넘어질 수는 있다 해도 절망하지 말고. 나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다 바쳐 오늘을 살아야지.” ‘꽃다지’가 부른 이 노래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다.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간에 모든 분에게 이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다. 떨리는 내 목소리지만 희망을 노래하고 싶다. 곁에 있는 이웃으로부터 시작하여 저 멀리 마실 물을 찾아 200리를 걸어야 하는 나의 이웃들이 들을 수 있도록 작지만, 진실한 노래를 불러서 희망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지금은 삶이 노래가 될 수 있도록 세상 안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교회는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올 그 한사람까지도 하느님 백성으로 여기며 ‘영혼들을 돌보는 어머니 교회’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모든 이들을 품어 안는다. 교회의 이 의도를 아는 교회의 지체들은 희망을 품고 새해의 새날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가 바로 하느님께서 품으신 그분 희망의 표지이다. 이 희망은 “사랑으로” 드러난다.

노틀담 생태영성의 집 조경자(마리 가르멜, 노틀담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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