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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른에 도착한 기쁨도 잠시, 캐리어가 없다

루체른에 도착한 기쁨도 잠시, 캐리어가 없다

[미카엘의 순례일기] (50)불안한 예감은 현실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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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발행 [1645호]



스무 명에서 마흔 명에 달하는 순례단과 함께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어떤 사고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일지 모릅니다.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자 첫 순례였던 한 부부는 여수에서부터 밤새 여섯 시간이 넘도록 차를 몰아 아침 일찍 인천공항에 도착하셨는데, 거실 탁자 위에 자매님의 여권이 놓여 있다는 자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어떤 본당의 순례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정을 함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버스를 준비해서 본당에서 같이 출발했는데, 자매님 한 분께서 아침 식사 대용으로 준비한 떡을 나누어 주시려고 일어섰다가 결국 넘어지셨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골절되지는 않으셨지만, 순례 내내 지팡이를 짚고 다니셔야 했지요.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대장폐색이 시작되어 도착하자마자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던 또 다른 자매님은 현지에서 수술을 받고 열흘 내내 병원에서 지내시다가 돌아오는 순례단과 함께 귀국하신 적도 있습니다. 이런 돌발 사고는 지나간 후에는 추억거리가 될 수 있지만, 일어난 당시에는 몹시 당황스럽고 식은땀 나는 일입니다.

특히 비행기와 관련해서 야기되는 문제는 예상할 수도 없을뿐더러 일정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사실 항공 사고는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는 편이라서 제가 아는 인솔자 중에서 승무원의 파업이나 기상 악화, 또는 Bird-Strike(비행기와 새의 충돌)를 포함하여 항공 관련 문제를 겪어보지 않은 이는 없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처리하기도 곤란한 문제는 바로 여행용 가방이 제때 도착하지 않는 일입니다. 기내 캐리어는 본인이 주의를 기울이면 되지만, 수하물 칸에 넣어야 하는 대형 캐리어는 공항 근무자의 작은 실수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예방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이후 순례단 사이에 사소하지만 미묘한 감정의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방을 쓰는 두 분 중 한 분에게 그런 일이 생기면 서로 부담을 가지고 눈치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 분은 잠자리에 들 때조차 매일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고, 다른 분은 자기 가방을 여닫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워집니다. 화장품 하나 없이 며칠을 지내는 건 또 얼마나 불편한 일인가요. 이것이 며칠 간 지속되면, 이제 아름다운 순례지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요.

젊은 시절 로마에서 오랜 시간 동안 수학하셨던 신부님께서 본당 신자들과 함께 순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이탈리아를 잘 알고 계시니 일정의 전반적인 틀을 미리 잡아주셨는데, 순례와는 상관없지만 이탈리아와 가까운 알프스의 아름다운 장소 몇 군데를 일정에 넣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젊은 시절 유학을 떠날 때 이탈리아로 직행하는 비행기가 없어서 김포공항에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을 거쳐 로마까지 이동하는데 무려 24시간이 걸리셨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으니 한숨도 자지 않고 창밖 풍경을 감상하던 중 스위스의 알프스 산지를 지나셨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그 아름다움에 감격해 하느님께 저절로 기도를 올리셨다지요. 그 시절의 그 마음을 순례에 함께할 신자와 함께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더위가 시작될 무렵의 알프스는 대단히 춥지는 않으면서도 겨울의 정취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더욱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원하신 일정과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A 항공사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항공사 중에서도 유난히 캐리어와 관련된 이슈가 많은 곳이 있는데, A 항공사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 때문에 많은 인솔자가 A 항공사를 이용하는 일정을 꺼리지만, 요금이 저렴한 데다 한국에서 매일 출발하는 항공편이 있다는 장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탑승하는 일이 잦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이러한 문제를 미리 말씀드렸지만, 신부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A 항공사를 여러 번 이용하셨지만 그런 일은 없으셨다고요.

출발하는 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떠나는 순례단과는 달리 저는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결국,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고 ‘빛의 도시’라는 뜻을 지닌 루체른에 도착한 29명의 순례단 중에 제대로 캐리어를 받아든 사람은 인솔자인 저를 포함해 불과 5명뿐이었습니다. 공항에서 분실신고를 하고 가까운 정류장으로 이동하는 내내 제 가방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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