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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 - 하느님이 맡기신 소명의 잔

[생활속의 복음] 주님 세례 축일 - 하느님이 맡기신 소명의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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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09 발행 [1645호]
▲ 함승수 신부



물은 상반된 두 가지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생명’입니다. 인간은 단 사흘만 물을 마시지 못해도 죽음에 이릅니다. 물은 삶을 유지해주기에 ‘생명’이라는 이미지를 지닙니다. 다른 하나는 ‘죽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살아가는 생명체는 물속에 빠지면 단 몇 분 만에 죽음에 이릅니다. 물은 삶을 중단시키는 ‘죽음’이라는 이미지 또한 지닙니다. 물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세례성사’는 ‘새로 태어남’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물속에 빠짐으로써 하느님을 모른 채 죄를 짓고 살던 ‘과거의 나’가 죽고, 물 밖으로 나옴으로써 다시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겁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 세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십니다. 요한이 베푼 세례란 죄를 용서하여 영혼을 깨끗이 씻는 회개의 세례이기에, 죄를 짓지 않으신 예수님은 굳이 그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굳이 하지 않으셔도 될 일을 행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나중에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실 때 들려오는 하느님의 음성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 아들을 인간이 되게 하신 하느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 아들을 물속에 담그시어 물을 거룩하게 축복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축복하신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나의 뜻’을 물속에서 깨끗이 씻어내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채워 물 밖으로 나옵니다.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 욕심과 고집, 시기와 질투를 물속에 남겨두고 물 밖으로 나와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예식인 것이지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제1독서가 그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이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거센 바람에 부러진 갈대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갈대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부러진 갈대를 다시 세우고 부목을 대준다면, 누군가가 심지에 다시 불이 붙을 수 있게 옆에서 적당한 바람을 계속 불어준다면, 부러진 갈대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꺼져가던 초에도 다시 불이 붙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추구하시는 ‘공정’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잘못을 용서하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기를 바라십니다. 삶의 매 순간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성실하게 실천함으로써 그분께 사랑받는 자녀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모호할 때가 많습니다. 또 안다 해도 받아야 할 고통의 세례가 힘겨운 나머지 하느님께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달라’고 청할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바치는 기도는 예수님처럼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는 기도여야 합니다. 우리가 물로 받은 세례는 성령의 불로 타오르고 정화됨으로써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소명의 잔이 무엇인지 묵상하며, 그 잔을 기꺼이 받아 마실 힘과 용기를 청하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고통과 시련마저 기꺼이 받아들일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함승수 신부의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_0TX0X5)에 가시면 매일 ‘생활 속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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