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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7.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7. 사람들 사이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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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3 발행 [1647호]

강화에 살 때에는 문만 열면 자연과 맞닿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그러니 어쩌다가 미세먼지로 공기가 안 좋은 날이면 온종일 심각한 기후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같은 시각에 숨 쉬며 살면서도 서울에서는 어쩌다가 미세먼지 없는 날이 되면 밖을 내다보며 그나마 ‘오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게 된다. 강화도에서 봤던 사람들의 밝은 얼굴들과 대조적으로 도심에서 사람들은 마스크 안에 표정을 봉인시킨 듯한 모습이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무채색이 떠오를 것 같은 이미지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도심에서 생활하다 보니 촌뜨기가 도심을 바라보는 방법을 몰라서 알아보지 못했을 뿐, 정말 다양한 색이 곳곳에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된다. 시골에서는 펼쳐진 그 환경 자체가 아름답다. 그런데 도심의 아름다움은 겉만 봐서는 안 된다. 그 속을 봐야 한다. 나는 도심 속 아름다움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코로나 19가 우리에게 사회적 거리를 갖게 하였고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만한 마음의 거리를 둔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출퇴근길 만원 버스와 지하철에서 꼭꼭 끼어 타며, 한 사람이라도 더 탈 수 있도록 사회적 거리를 좁혀준다. 자신의 얼굴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주고, 다른 사람들이 숨 쉴 공간을 배려해준다. 펭귄들이 영하 50℃의 추운 겨울을 날 때에 허들링하는 것처럼 코로나 19라는 이 겨울에 도심 속 사람들은 함께 살 수 있는 온기를 이렇게 찾고 있다.

엊그제 나는 세종로 한복판에서 “지구를 살려주세요”라고 쓰여 있는 앞치마를 입고, 두 손에는 박스 종이에 “기후행동 지금당장”이 쓰인 피켓을 들고 광화문 기후행동을 하였다. 그런데 한 할머니께서 나를 먼발치에서 눈여겨보시더니 가까이 다가오셨다. 마스크를 썼으니 나는 눈으로 웃어 인사드렸다. 칠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정말 미안해요. 우리가 다 망쳤어. 우리가 이렇게 되도록 이 땅을 다 망쳤어. 미안하고 고마워요.” 할머니는 이 말씀을 마치시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시더니 피켓을 들어 올린 내 오른손 장갑 속으로 넣으셨다. 그리고는 “따뜻한 밥 한 끼 해주고 싶지만, 이걸로 꼭 사드세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아녜요 어르신. 그냥 마음으로 함께 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지만, “내가 고마워서 그래”라고 하시며 자리를 떠나셨다. 장갑 속에서 돈을 꺼내보니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큰 액수의 돈이기도 했지만, 할머니께서 나눠주신 마음이 너무도 감사했다. 할머니께서 주신 오만 원의 가치는 모든 기후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밥처럼 다가왔다. 따뜻한 지지의 눈길과 이야기가 오가는 도심 한복판에 지난봄부터 그 자리에 가지런히 핀 꽃 무더기를 발견하는 마음이 되었다. 마치 밭일하는 우리에게 한 상 차려 머리에 이고 밭으로 찾아오셨던 아랫집 할머니를 다시 만난 것 같아, 생각해보면 도시에서의 모든 일이 밭 매는 일과 다를 것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러니 이 도시는 사람이 땅이고, 사람이 나무이고, 사람이 꽃이고, 사람이 희망이다.

이 도시의 거리를 주님께서 함께 걷고 계시다. 지나치는 사람들 속에, 만원 버스라도 자리를 만들어주는 사람들 안에, 지지와 용기를 주는 눈빛 안에, 또 마음이 가난한 이들 안에 예수께서 계시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자유롭게 하신다. 그분은 이 일을 하기 위해 오셨고, 또 영원히 함께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말씀이신 분이 우리의 ‘오늘’에 항상 살아오시며, 당신의 ‘섬김’으로 말씀을 이루어주신다. 이 도심, 이 거리, 사람 서리 어디에서나 우리 주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가만히 보면 알 수 있다. 이미 해방해주셨음을, 이미 와 계심을….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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