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예수님 통해 ‘하느님 자녀’로서 새로운 정체성 부여

예수님 통해 ‘하느님 자녀’로서 새로운 정체성 부여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10. 하느님의 구원경륜 ⑦ -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구원역사

Home > 사목영성 >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022.01.30 발행 [1648호]
▲ 하느님 구원 경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으려면 안내자가 필요하고, 그 안내자는 바로 성모님이다. 그림은 장미 나무에 15개의 메달을 그려 그곳에 성모님의 시선으로 바라 본 일화를 담은 로렌초 로토 작 ‘로사리오의 성모’. 출처=가톨릭굿뉴스



성경은 우리가 알다시피 구약과 신약, 곧 하느님과 맺은 ‘옛 계약’과 ‘새 계약’을 통한 구원의 역사이다. 그 구원의 역사가 한 번의 계약으로 종결되지 않은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맺은 첫 번째 계약에 불충실했기 때문이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예언자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해진 마음을 회두시키려 했지만, 그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에게 다가오셨다.



죄의 상처 씻어주고 완고해진 마음 정화

요한복음은 새롭게 펼쳐지는 하느님의 구원 의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이러한 구원 의지의 선포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 사이에 맺은 새 계약은 당신의 외아들을 통해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새롭고도 획기적인 사랑의 증여 방식이다. 곧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죄를 심판하지 않고, 형언할 수 없는 더 큰 사랑으로 당신 백성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돌판에 새겨진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옛 계약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이 지은 죄의 상처를 씻어주고 완고해진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다. 또한 성령의 도움으로 온전히 새로 태어나게 하고 근원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새로운 계약이다.

예수님께서는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새로 태어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니코데모는 “이미 늙은 사람이 어떻게 새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야 함”(요한 3,5)을 부연하신다. 물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물과 피를 통한 죄의 사함이요, 성령은 우리 마음에 새겨지는 하느님의 영이다. 이렇게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날 때, 하느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새 계약이 완성된다. 요컨대, 바오로 사도가 증언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자녀(본질적인 차원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한 양자로서의 자녀)로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로마 8,15) 구약성경에서나 당시 어떤 사람들도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른 경우는 없었다.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하느님을 그렇게 불렀다. 당시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겨, 일반적으로 “야훼” 하느님을 “아도나이”라고 불렀다.



신앙의 어머니요 안내자이신 성모 마리아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시 어린이가 자기 친부를 부를 때 쓰던 “Abba”(아빠)라는 명칭으로 하느님을 부르도록 한 것은 아주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것은 하느님과 예수님 사이의 특별한 관계, 즉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드러내 준다. 요컨대 “아빠, 아버지!”라는 하느님의 칭호는 예수님에게 하나의 상징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당신 자신이 하느님과 본질이 같으신 분, 친자녀임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느님과의 당신과의 새로운 관계를 계시함으로써, 그리고 우리를 당신 형제로 받아들임으로 해서 우리가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도록 우리를 초대하셨다. 요컨대,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젖먹이 어린이가 그의 부모님과 관계를 맺듯이 아주 친밀하고 서로 신뢰하는 관계가 되어야 함을 제시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떤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하느님의 상속자(로마 8,17)가 되는 특권을 부여받게 됨을 가리킨다. 예수님이 선포한 복음은 바로 당신 아버지이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하고, 그분과의 관계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나이 계약으로 온전히 회복되지 못한 하느님과의 관계는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펼쳐진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통해 회복된다. 미사 성찬 기도문을 종결하는 마침 영광송은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리는 영광송이자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인간의 구원 여정을 드러내 주고 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하느님께서 새롭게 펼치신 구원 경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으려면 안내자가 필요하다. 바로 그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당신 제자들에게 신앙의 어머니요, 신앙의 안내자로 내어주신 성모님이시다. 따라서 성모님의 시선으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의 기쁨을 맛보고(환희의 신비), 성모님의 시선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바치신 수난에 참여하고(고통의 신비), 성모님의 시선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신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영광의 신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경륜의 심오한 사랑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펼치신 복음 선포에 참여하고 복음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