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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정우의 인연의 향기] 열린 생각 너그러운 마음

[길정우의 인연의 향기] 열린 생각 너그러운 마음

길정우 베드로(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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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20 발행 [1650호]


베이징 동계 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한 한복 탓에 한동안 시끄러웠다. 우리끼리의 논란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은 구석들이 있었다. 조선족은 중국의 소수민족들 가운데 하나다. 그리고 대표적인 소수 민족에게 전통의상을 입혀 개회식에 등장시켰다. 조선족에게는 그들의 의상을 입혔다. 우리는 이를 ‘한복’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을 중국의 일부라고 보는 수작이라 반발한 것인가. 우리 문화와 역사를 무시하는 중국의 행태가 못마땅했던 까닭인가.

조선족이 허드렛일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그들을 대하는 우리는 결코 너그럽지 않다. 조선족을 이등국민 취급하고 있다.

게다가 한복을 우리 옷이라 그리 중시한다면서 한복 입는 경우가 일 년에 몇 번이나 되는가. 그저 결혼식장의 혼주 몇 사람 말고는 기억조차 힘들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우리 장관이 한복 두루마기 입고 앉아있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이 또한 중국 측 계획을 미리 알아채고 한복은 우리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 대처한 것이란다. 이런 발상이 우리를 더욱 답답하게 만든다. 한복이 우리의 자랑이라면 우리부터 자주 입고 더욱 아름답게 개선해가야 한다. 다양한 행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옷이 되도록 노력해야 마땅하다.

의상도 문화의 일부라면 우리 자신의 문화가 가진 가치에 충실하고 꾸준히 의미를 부여해 가야 한다. 제대로 갖춰 입는 데 다소 힘이 들지언정 한복 입은 모습이 보기에 아름답고, 입는 사람들 역시 마음 훈훈한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기왕 얘기를 시작했으니 한식도 언급해 보자. 이명박 정부에선 영부인까지 나서 한식 세계화를 부추긴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서 그럴듯한 한식집이 자리 잡지 못했다. 우리 음식에 가치 부여하는 데 우리는 인색했다. 조금 값비싼 한식에는 칭찬보다 불평이 앞섰다. 손 많이 가는 한식은 그래서 성장하지 못했다. 일본 스시 집이나 프랑스 식당에선 비싼 돈 내며 먹고 나서도 군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우리 음식에는 까탈스럽다. 그러다 보니 외국에 소개되고 인기 끄는 한식은 비빔밥이나 불고기, 떡볶이 정도다. 좀더 세련된 한식은 설 땅이 없다. 아무튼, 옷이든 음식이든 우리는 우리 문화에 의미 부여하는 데 인색하다.

우리가 우리 것에 너그러울 때 비로소 주변국 역사와 문화에 마음을 열 수 있다.

평생 건축역사 연구에 진력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신문에 기고했던 글을 모아 책을 출판했다. 「건축의 시간, 영원한 현재」란 책이다.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현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 자리한 건축물들을 선별해 소개했다.

출판기념회를 대신한 모임에 참석해 저자에게 질문할 수 있었다. “이 책이 건축적 사유를 통해 당시의 사회 모습을 그려보려는 시도라고 했다. 저자가 생각하는 ‘현재’라는 시점과 ‘한국’이라는 장소를 반영한 건축적 사유의 중심 개념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숨과 삶을 품는 건축은 영겁이 지나도 근본과 현재 사이에서 묻고 대답한다”는 책 속의 표현을 인용했다.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건축물에 공통적으로 관통하고 또 근원을 이루는 요소는 내가 사는 이곳과 현재를 넘어서 세계 속에 기여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가치라고 답했다. 우리 건축물도 다른 문화적 요소와 더불어 세계 속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한다는 열린 마음과 생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는 얘기였다. 같은 생각이다.

정치의 계절인지라 듣기 거북한 얘기나 거친 말투 정도는 참고 견뎌야 할 모양이다. 하지만 마음 한쪽에선 넓고 큰 세상 속의 우리 모습을 늘 생각하고 그려보며 살아야 한다. 갈수록 안으로 움츠러드는 자해행위와 같은 정치행태에는 출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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