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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단상] 사랑하는 봄(홍찬미, 글로리아, 싱어송라이터)

[신앙단상] 사랑하는 봄(홍찬미, 글로리아,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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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06 발행 [1652호]



찬바람 사이로 봄이 조금씩 깃들기 시작하는 3월입니다. 사랑하는 봄이 오고 있나 봅니다.

요즘 저는 봄과 함께 찾아오는 것들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서강대학교의 성이냐시오관에는 커다란 자두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는데, 나무는 매년 봄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을 드리웁니다. 연둣빛 잎사귀가 돋아난 가지에 푸릇푸릇한 잎이 한가득 피어났다가 이내 새하얀 꽃잎들로 뒤덮이는 그 모습이 매년 얼마나 ‘새롭게’ 신비로운지 모릅니다. 이맘때는 퇴근하기 전에 꼭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 달콤한 자두꽃 향기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거든요.

올봄에도 자두나무가 꽃을 틔우겠지요? 이 밖에도 세상엔 온갖 풀들이며 봄꽃들이 가득 피어날 테고 아마 저의 자두나무와 같은 존재가 다른 분들에게도 있어,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에게 봄을 가득 실어 올 겁니다.

“그럼에도 계절은 멋진 풍경이 되고

그 바람에 내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어요”

작년 봄에 발매된 제1집 음반의 수록곡 ‘풍경’의 한 구절입니다. 가사를 썼던 건 그보다도 1년여 전의 일이었는데, 어느 날엔가 출근길에 무심코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왈칵 쏟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매일 지나치던 자두나무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온통 새하얀 봄이 되어 그날따라 펄펄 흩날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모습이 마치 저더러 이제 그만 차갑고 건조한 겨울로부터 걸어 나오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지요.

서너 해 전, 교목처에 처음 왔을 때의 저는 이전처럼 노래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마음을 많이 다친 상태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계속해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자그마한 피난처가 되어준 교목처에서의 첫해가 끝나갈 무렵엔 제 안에 사랑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마치 제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나무가 홀로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가듯, 저를 어루만지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저에게도 어느새 무수한 ‘봄’이 피어나 있었다는 것을 그 새하얗게 흩날리던 봄날의 자두나무 앞에서 제가 알았습니다. 그 봄에 저는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메마른 겨울 동안 참고 참았던 것을 다 쏟아내기라도 할 것처럼, 비로소 새로운 노래를 써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바삐 지내다가도 이따금 고개를 들어보면 우리 주위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져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 자신의 약함을 지금 당장 어찌할 수 없다 해도, 그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서서’ 그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조금은 나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열린 창으로 바람이 넘나들고, 저 멀리까지 향기를 전하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니, 이 봄에는 창문을 조금 열어두어 보셔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계신 하느님의 선하신 뜻에 우리를 힘껏 맡겨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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