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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꽃의 의미(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시사진단] 꽃의 의미(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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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7 발행 [1655호]



3월 들어 포근했다. 우리의 오랜 경험은 몸에 체감적 데이터로 축적되어 있다. 3월 초엔 절기상 경칩이 있는데 이른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오는 날이라고 전해온다. 하지만 개구리가 나왔다가 꽃샘추위에 얼어 죽었다, 추워서 도로 쏙 들어갔다. 절기가 그리 맞지 않는다는 경험적 반론도 많다.

하지만 올 3월은 제법 포근하게 대선도 치르고, 따뜻하게 가는가 싶었는데 3월 중후반에 꽃샘추위가 왔다. 세상에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 하는 법.

오십이 훌쩍 넘은 필자의 친구들 SNS를 보면 다가오는 봄과 ‘밀당’하는 재미있는 표현들이 눈에 띄었다.

엇, 추워. 가던 겨울 도로 온다. 이럴 줄 알고 아직 내복 안 집어넣었지롱. 4월까지도 겨울 패딩 세탁하면 안 돼. 동장군의 심술. 겨울의 꼬리는 길다 등등이다.

하지만 그것도 며칠, 결국 봄은 왔다. 그리고 봄의 상징이 여러 곳에 만개하기 시작했으니 꽃이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많은 꽃을 보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나 아파트 단지마다 벚나무들도 조성돼 있고, 거리마다 여기저기 화단에는 꽃이 핀다. 주말에 등산 가는 인파는 봄꽃에 눈길과 마음을 빼앗기고 폰카를 누르기 바쁘다. 교외 맛집으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속도는 여유로워지고, 누구나 꽃을 보며 오랜만에 마음속에 자연이 들어온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이다.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은 SNS로 옮겨진다.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구차한 변명을 달면서 올리는지 ‘꽃 사진 올리면 아재라는데 너무 예뻐서 올림’하는 식의 토를 달고 올린다. 마치 자기는 아재가 아니라는 듯이. 하지만 이렇게 올리는 모든 지인은 아닌 게 아니라 다 아재들이다.

이미지로 보는 꽃들조차 다 예쁘고 아름답다. 다양하고 다채로워 이름을 다 알 수 없지만 저마다 다른 모양, 다른 색깔, 다른 종의 꽃 중 아름답지 않은 것은 없다. 눈에 뜨이는 아름다운 꽃들을 있는 그대로, 시각으로 즐기고, 풍기는 향을 즐기는 일도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에게 그 자체로 축복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꽃을 더 다양하게 즐기고 누리기 위한 양식을 발전시켰으니 그것이 예술이고 문화다. 꽃을 그리며 미술이 발전하고, 꽃의 문양을 집에 조각하며 건축도 발전했고, 꽃마다 신화와 전설이 붙여지며 꽃말이 만들어져 필자 젊은 시절에 청소년, 청년들은 집에 꽃말 사전 하나씩 두고, 연모하는 이성에게 꽃말에 맞는 꽃을 선물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한 친구가 이야기한다. 지난 밸런타인데이에 튤립 한 송이를 받았는데 빨간 튤립이어서 꽃말을 찾아보니 ‘열렬한 사랑’이더라, 그런데 이 꽃을 유리병에 꽂아놨더니 활짝 피었는데 안쪽은 신기하게 노란 꽃잎이더라. 꽃말을 보니 같은 튤립이어도 노란색은 ‘시들은 사랑’이라고 되어 있는데 꽃을 준 여학생의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알쏭달쏭 퀴즈 같은 화제와 수다가 이어졌다.

꽃을 묘사한 문화예술의 정점은 시였다. 동화와 문학도 있다. 굵직한 주제 의식으로 중세역사를 세밀하게 그려나간 움베르토 에코 작가의 ‘장미의 이름’ 같은 묵직한 소설작품도 있다.

대문호가 아니더라도 봄날이 오면 우리의 할머니들은 꽃이 곱구나 하면서 지나간 자신의 삶을 회상했다. 꽃은 우리의 감각 중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오브제다. 하지만 씨앗에서 새싹, 줄기와 잎, 꽃, 열매로 이어지는 과정과 계절의 어우러짐은 모든 생명의 상징으로 사유된다. 꽃을 즐기되 더는 꽃의 의미를 사유하지 않는 시대는 슬프다. 더는 시를 읽지 않는 시대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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