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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안에서 응답할 때 완성되는 ‘하느님 사랑’

관계 안에서 응답할 때 완성되는 ‘하느님 사랑’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하느님의 구원경륜⑭-‘인간생태’ 재건에 대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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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7 발행 [1655호]
▲ 「사목헌장」은 인간 존엄성이 빼어난 이유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을 받은 인간 소명에 있다고 전한다.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작 ‘사도들을 부르심’.



한 포기 작은 풀일지라도/ 그것이 살아 있으면/ 비에 젖지 않나니

더구나 잎이 넓은/ 군자풍의 파초임에랴/ 빗방울을 데불고 논다

한 마리의 집오리일지라도/ 그것이 살아 있으면/ 물에 젖지 않나니

더구나 몸가짐이 우아한/ 왕비 같은 백조임에랴/ 물살을 가르고 논다 (지조 / 황명걸)



‘지조’라는 시에서 시인은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한 포기의 작은 풀이나 한 마리의 집오리라도 살아 있으면 비와 물에 젖지 않는다고 노래한다. 요컨대 하찮은 생명체라 하더라도 생명체 나름대로 각기 고유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더군다나 작은 풀이나 집오리보다 우아한 모습을 지닌 파초나 백조는 자기 정체성 유지에만 머물지 않고 유유자적한 자연계의 아름다움, 즉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자연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지만,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인간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럽지도 쉽지도 않다. 그 이유는 지난 연재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이 겸손을 잃고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느님께 죄를 범하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인간은 하느님의 집(모상)으로써 근원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하느님의 모상(집)을 재건하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구원경륜’을 펼치셨다. 하느님께서 펼친 구원경륜의 핵심은 당신 외아들을 이 세상에 파견하시어 이루신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심으로 인간이 하느님처럼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처럼 가정에서 생활하시며 직업을 가지고 일상을 사심으로써 우리도 일상생활을 통해 하느님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으로 죄를 씻어버리고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과 허무를 물리치셨으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으로써 우리는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이 모든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계명을 잘 지키고, 선행을 많이 해서 얻게 된 보상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신 은총의 선물이다. 이러한 사랑 덕분에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인간 본래의 정체성이 회복되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마태 5,48)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완전함’의 세계로 초대하신다. 요컨대 ‘하느님의 모상’ 회복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랑의 완성인 ‘완전함’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완전함의 길은 바로 관계 안에서 사랑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사목헌장」에서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성으로 초대받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 존엄성이 빼어난 이유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름을 받은 인간의 소명에 있다. 인간은 이미 태어날 때부터 하느님과 대화하도록 초대를 받는다.”(19항)

‘관계 안에서 응답’할 때 하느님의 사랑은 완성되어 간다. 결혼한 사람들은 어떤 순간이 가장 행복한지를 상상해 본다. 아마도 신혼생활을 지내면서 사랑의 열매로 첫 아이를 출산할 때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때 신혼부부들은 사랑과 생명의 신비를 체험할 것이다. 태어난 후 몇 주간 동안 아기는 그저 본능적으로만 반응하다가 차츰 아빠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아빠와 눈을 맞추고, 어르면 까르륵거리며 좋아한다. 아기가 점점 자라 혼자서 과자를 집어 먹을 만큼 되면, 아빠는 아이 입에 과자를 넣어 주기도 하고 아이가 아빠 입에 과자를 넣어주며 서로 친밀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특히 아이가 아빠 입에 과자 하나를 넣어 주는 순간, 기쁨이 온 집안을 가득 채운다. 아빠는 아기가 넣어주는 과자 하나에 왜 이토록 행복해하며 감동할까? 그 자그마한 과자 하나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길래! 그 이유는 바로 아이가 아버지의 사랑에 응답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렇게 응답을 통해 깊어지고 커지고 우리 가슴을 적셔주고 삶의 의미를 체험케 하는 말로 설명되기 어려운 신비이다. 사랑은 우리 노력으로 만들어 낼 수 없으며,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응답하는 관계 안에서 발생되는 ‘생명의 불’이라 할 수 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응답하여 그 사랑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릴 때, 사랑은 완성에 이른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고 그것에 응답하는 관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얻고 또 얻어 차고 넘치게”(요한 10,10) 해 주신다. 요컨대, 사랑에로의 부르심과 응답 안에서 우리의 생명력은 더욱 풍성해진다. 하느님께 받은 은혜에 대해, 진심 어린 기도나 찬미로 응답하며 되돌릴 때,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소중한 것들, 나의 재능이나 재물 등을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께 되돌리는 마음으로 나눌 때, 그리고 우리에게 닥친 여러 시련이나 불운을 하느님께 희생의 예물로 봉헌할 때, 전혀 예기치 못한 사랑의 불꽃이 피어나 우리에게 그 사랑이 차고 넘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간생태’인 우리 영혼이 재건될 때 우리는 에덴동산의 축복을 누릴 것이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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