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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기도문을 천천히 암송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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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의 순례일기] (61)소리 내어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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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3 발행 [1656호]
▲ 순례자들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성모님께서 발현한 벨기에 반뇌 성지 성당을 방문해 기도하고 있다.



가끔 순례 중에 봉헌되는 미사를 평소와 달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순례자에게 좀 더 특별한 감동을 주기 위해 지도 신부님께서 색다른 제안을 해주시는 것이죠. 한 신부님께서는 서로에게 봉사하는 삶에 대해 강조하시면서, 우리가 같은 예수님의 몸을 나누어 영하는 형제자매라는 의미를 전례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셨습니다. 맨 앞에 선 분이 신부님께서 들고 계신 성합에서 성체를 집어 전해주고, 성체를 받아모신 사람은 다시 그 뒷사람에게 같은 형식으로 성체를 나누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교회에는 성체 분배자로 활동하는 평신도가 있지만 오랜 신앙생활을 한 남성 신자의 역할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아서, 성별의 구분이나 신앙생활 기간의 차이를 두지 않고 모두가 서로에게 예수님의 몸을 나누었던 그 시간을 아직도 오래도록 기억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는 제단 앞에 서서 제대에 절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감실에 절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신 적이 있습니다. 지도 신부님께서는 강론 중에 감실의 역사와 제대가 가진 의미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대는 성당의 중심이며 그 자체로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또 주님과 나눈 최후의 만찬과 하늘나라의 잔치가 벌어지는 식탁이므로 천상에서의 잔치를 미리 맛볼 수 있는 장소라고 말입니다. 강론이 끝나고 성찬의 전례가 거행되기 전, 신부님께서는 순례자 모두가 제단 위에 올라 제대에 한 손을 얹고 무릎을 꿇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잔치에 초대받은 순간을 느껴보자고 하셨습니다. 순례자들은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많았습니다.

물론 다소 난처한 일도 있었습니다. 한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기도의 방법과 형식에 관해 이야기해주시고는, ‘매일미사’의 기도문 대신 각자 마음속의 기도를 보편 지향 기도로 바치자고 하셨습니다. 순례 중에 봉헌하는 주일 미사에서도 ‘매일미사’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인지라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굳게 마음을 먹으신 듯 한참을 기다리셨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고, 결국 그날의 미사도 ‘매일미사’에 나온 기도문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알고 있다시피, 개신교의 신자분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소리 기도를 하십니다.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신 분과 순례하다 보면 마음속의 기도를 그대로 꺼내시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천주교인들은 자유 기도에 그토록 약한 것일까요?

저는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해보았습니다. 2000년이 넘는 교회의 역사 동안, 수많은 이들이 ‘좋은 기도문’을 많이 남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언어보다 훨씬 더 깊고 풍부한 말과 표현으로 다듬어진 기도문이 많고 많으니까요. 저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기도문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분의 기도는 제가 오랜 시간 동안 머리로만 막연히 생각해왔던 내용을 아름답고 진실된 말로 표현해주고 있지요. 저에게 이 기도문을 읽는 것은, 개신교 신자가 현란한 수식어로 한참 동안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기도입니다.

그러니 혹시 다음번에 갑자기 소리를 내 기도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거나, 무언가 기도를 하고 싶은데 즉석에서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민망하게 느껴지신다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대신 가장 좋아하는 기도문을 하나 골라 천천히 암송해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굳이 흔치 않은 특별한 기도문이 아니어도 좋겠습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삼종기도…. 그 자체로 열렬한 신앙의 고백인 기도문들을 마음속에 담고 사는 것이야말로, 진실한 신앙인의 기도가 아닐까요?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제가 당신께로 향하는 것은 제게 약속하신 천국을 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 당신께 저를 내어 드리고 저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신께로 향하는 것은 / 지옥이 그토록 두렵기 때문도 아닙니다.

천국에서 저를 구원하시기 때문도 아니요, / 지옥에서 영원히 저를 단죄하시기 때문도 아니요, / 어떠한 보상을 바라기 때문도 아닙니다.

주님! / 마지막까지, 오로지 당신의 사랑, 당신의 방법으로 저를 써주소서. / 비록 천국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도록 저를 이끌어주시고 / 비록 지옥이 없다 하더라도 당신을 두려워하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주님, 당신께서 조롱받으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보도록 저를 이끌어주십시오. / 당신의 몸이 그만큼 상처 입으신 것을 보도록 해 주시고, / 당신이 모욕받으셨고, 돌아가신 것을 보도록 해 주십시오.

제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저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저 당신이 먼저 저를 사랑하셨기에 저 또한 당신을 사랑할 뿐입니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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