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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잘못된 가치의 우상숭배가 사회 공동체 파괴

돈과 잘못된 가치의 우상숭배가 사회 공동체 파괴

[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19. 사회 공동체의 위기② 우리 시대의 우상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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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0 발행 [1657호]
▲ 잘못된 가치가 우리 삶의 첫 자리를 차지할 때, 우리 삶은 뒤틀리고 그 안에서 연약한 생명들이 희생되며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의미가 상실되기 쉽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 시카고 미술관.



지난 연재에서 언급하였듯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소통과 상생, 친교와 협력의 가치가 약화되고 있다. 대신 ‘무한경쟁’, ‘각자도생’, ‘적자생존’, ‘승자독식’이라는 신자유주의 규칙이 우리 사회 전반에 득세하면서 ‘상생의 집’이 되어야 할 사회 공동체가 위기를 겪고 있다.



‘상생의 집’이 되어야 할 사회 공동체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위기를 겪는 근원적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이런 상황을 가져온 원인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돈과 맺는 관계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돈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중략) 과거 황금 송아지를 경배한 것이(탈출 32,1-15 참조) 무자비하면서도 새로운 탈을 쓰고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는 돈의 우상숭배라는 가면을 쓰고, 참된 인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비인격적 경제 독재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습니다.(중략) 사람은 단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존재로, 오로지 소비만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환원됩니다.”(「복음의 기쁨」 55항). 교황은 ‘돈’과 관련된 물질적인 안락과 잘못된 가치들이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우상숭배가 바로 오늘날 사회공동체의 위기를 부추기는 근원적인 요인임을 드러낸 것이다. 인간의 참된 목적과 방향성을 상실한 가운데 물질적인 안락의 추구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인간 상호 간의, 영적, 종교적 차원과 같은 실존의 더 심오한 차원들은 점점 무시되고 있다.

우선 창세기의 원조들이 범한 죄 속에는 우상숭배가 내포되어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뱀의 유혹에 귀를 기울였고, 하느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망과 자신의 쾌락을 하느님의 법 위에 올려놓고 우상숭배를 범했다. 하느님을 섬기는 데 삶의 ‘첫 자리’를 하느님께 내어드리지 않고, 대신 유혹자의 속삭임이나 자신들의 욕망, 쾌락 등을 하느님의 자리에 대신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 하느님의 법을 받으러 간 사이에, 금을 모아 송아지를 만들어 섬겼다. 하느님 대신 금송아지를 섬기는 우상숭배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 중에 대표적인 것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과 ‘그릇된 인간중심주의’(「찬미받으소서」 102-136항 참조)이다.



우리 시대 다양한 형태의 우상숭배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은 윤리가 강조하는 ‘한계’를 경멸하는 사고방식이다. 그 결과 인간의 통제력을 높여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이롭다고 생각하며, 이익이 된다고 여기면 어떻게든 그 이익을 쫓아서 행한다. 현대의 과학 기술 발전이 인류에게 긍정적인 발전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과학기술과 네트워크를 이용한 초일류 다국적 기업들이 탄생하여 경제 독점체제가 구축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부의 편중이 가속화되고 있다. 기술과 과학문명을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다 보니, 그것의 남용이 가져다주는 악영향은 인류를 파멸로 내몰 정도로 심대하다.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듯이 전 지구가 기후변화와 공기 오염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체계가 점점 기계화, 자동화되면서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대규모 실업사태가 예고되고 있다.

‘그릇된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하느님 대신 자신을 중심으로 삼아 타인이나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는 사고방식이다. 교황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젖어들면 당장의 유익을 가져오는 것만을 우선시하고 자기 자신 외에 나머지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으로 바라보거나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상대주의’ 세계에 빠지게 됨을 직시했다. 이것은 객관적 진리나 확고한 원칙을 부정하며, 이 사회에 유용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연약한 생명들은 유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내적 논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돈과 잘못된 가치가 우리 삶의 첫 자리를 차지할 때, 우리 삶은 뒤틀리고 그 안에서 연약한 생명들이 희생되며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의미가 상실되기 쉽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는 점점 기쁨이 사라지고 있으며, 우울감이 우리 주변을 휘감고 있다. 요즘 어머니 뱃속에 수태된 태아들은 생명을 경시하는 잘못된 가치관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고 해맑게 살아가야 하는 유년기, 초등학교 아이들은 조기교육 및 선행학습 등의 부담에 짓눌려 주위의 친구들과 맘껏 뛰어놀 수 없는 형편이다. 청소년들은 올바로 성장하기 위해 자기 성찰과 탐색의 시간이 필요한데, 입시에 억눌린 채 올바른 가치관 형성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취업 전쟁에 내몰리고,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운 좋게 취업했다 하더라도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결혼하기 어려운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결혼한 부부들도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가 속출하며, 불경기 때는 조기 퇴직으로 내몰린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길어진 노년기는 더 이상 축복의 시기가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 속에서 외롭고 고독하게 사는 시기가 되었다. 이 시대에 경제적인 풍요와 번영을 구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온 생애주기가 힘겨운 나날로 변해가고 있다. 돈과 잘못된 가치에 대한 우상숭배의 폐해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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