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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볶음’만 알고 떠난 루르드 순례

‘멸치볶음’만 알고 떠난 루르드 순례

[미카엘의 순례일기] (63) 자유 순례를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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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발행 [1658호]
▲ 루르드 광장 한 편에 자리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성상.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다음 마지막으로 당신의 가장 고귀하신 복되신 어머니를 우리에게 남겨 주시고자 하셨습니다”라는 강론을 자주 하신 것으로도 유명하다.



팬데믹이 조금씩 수그러드는 분위기에서, 여행이나 순례를 준비하는 분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시 시작될 여행과 순례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임이 거의 분명합니다. 많은 인원이 정해진 일정대로 한꺼번에 움직이기보다 소규모의 인원으로 자유로운 일정을 다니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에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입니다. 여행이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혼자 선택하고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성지 순례를 포기하고 좌절해야 할 만큼의 걸림돌이 되어야 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수산나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여러 차례 저와 함께 순례하셨던 일흔일곱의 수산나 자매님은 루르드를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루르드를 한 번 순례하려면 수많은 장소를 다시 다녀야 하고, 그러고도 막상 루르드에서는 이삼일밖에 머무를 수 없는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셨지요. 어느 날 자매님께서 친구분과 함께 회사로 찾아와 여권을 내미셨습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둘이서 순례를 가기로 했어. 루르드에서만 열흘 정도 머물 테니, 일단 항공권이랑 파리 호텔만 잡아 줘.”

사실 저는 이러한 자유로운 개인 순례를 추천해왔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숙련된 가이드의 안내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이미 다녀온 성지를 다시 가서 내가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시간도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알고 있는 프랑스어라고는 ‘멸치볶음(merci beaucoup: ‘대단히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며 ‘메르씨 보꾸’라고 읽음)’밖에 없으신 자매님 두 분이 루르드로 떠나신다는 말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걱정 가득한 제 표정을 읽으셨는지 자매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를 하시겠다며 껄껄 웃으셨지요. 저는 수첩에 파리 호텔 주소와 전화번호를 비롯해 기차 타는 법, 루르드 기차역에서 성지로 가는 방법 등을 자세히 적어 드렸습니다.

두 분을 공항까지 모셔다드리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혹시나 제 전화기가 꺼져 있는 것은 아닌가 수시로 확인하기까지 했지만, 단 한 통의 전화도 없이 시간은 흘러 귀국 날이 밝았습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분은 공항 게이트에서부터 너무나 해맑은 웃음과 함께 나타나셨습니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시고는 김치찌개를 먹자며 공항의 한식당으로 이끄셨지요. 그로부터 몇 시간 동안 두 분은 무용담을 펼치셨습니다. 호텔 직원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도 하고, 제가 수첩에 적어드린 메모를 보여주자 택시기사도 기차역까지 잘 데려다 주었다며 의기양양해 하셨습니다.

“기차표는 잘 사셨어요? 프랑스에도 우리나라 기차처럼, 빨리 가는 것도 있고 오래 걸리는 것도 있으니까요.”

“아, 그게 말이야. 기차역에 그 여직원이 아주 친절했어. 루르드 투, 하니까 표를 끊어서 출발 시간에 펜으로 표시도 해주고 타는 장소도 자세히 알려줬거든. 그렇게 사긴 샀는데, 이게 빨리 가는 건지 천천히 가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구. 그래서 그걸 물어보려고 다시 창구로 갔지만 이걸 대체 어떻게 말하나 막막했어. 아니 근데 이 할망구가 표를 꺼내면서 글쎄, 이러는 거야. ‘이 티켓이 슈웅~ 가는 거여, 아니면 칙칙~폭폭~ 가는 거여?’ 그랬더니 그 여직원이 단박에 알아듣고는 ‘슝슝~’ 하고 대답했어. 배운 대로 ‘멸치볶음’이라고 했더니 그이도 똑같이 ‘멸치볶음’이라고 그러더라구. 하하하.”

몸짓까지 섞으며 재연하시는 자매님의 모습에 따님과 저는 한참이나 웃었습니다. 화장실을 찾아가거나 식당에서 주문할 때의 에피소드, 순례를 온 프랑스인 자매님들과 친구가 되신 것까지 두 분의 이야기보따리는 그 후로도 한참이나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무작정 혼자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좋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꼭 가보고 싶었거나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은 순례지가 있다면,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무르며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 적이 있다면 수산나 자매님처럼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성지 순례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일정은 어쩌면 ‘소개’와 같을지 모릅니다. 그 안에서 하느님과 특별히 가깝게 느껴지는 성지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며칠이고 기도하며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수많은 나라를 넘나들며 유명한 성지들을 방문하는 것에 못지 않은 충만한 순례가 아닐까요?

아, 수산나 자매님의 이야기를 할 때에 꼭 빼놓지 않아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자매님과 친구분께서는 순례를 결심하신 뒤 100일간 매일 미사를 드리며, 예수님께서 그 길을 이끌어주시기를, 또 성모님께서 그 길에 함께하시기를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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