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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38. 부활절 아침에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38. 부활절 아침에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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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발행 [1658호]


곳곳에 봄꽃들이 피어나니 제아무리 코로나가 기승을 부려도 사람들이 꽃을 보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오고 있다. 화사한 꽃들이 코로나로 죽은 것처럼 꽁꽁 언 우리 마음을 녹이는 듯 얼굴마다 밝은 웃음을 가져오게 했다. 어린아이들이 떨어지는 벚꽃잎을 보며 “눈이다!”라고 환호하며 좋아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거리에 들리니 이제 좀 사람 냄새 나는 땅처럼 다가온다. 어디선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아이들의 놀이 소리가 들려온다. 다시 어린아이들이 밖에서 뛰어놀 수 있게 된 걸까? 마치 노아가 방주에서 정찰대로 비둘기를 내보내 희망의 표징을 찾았던 때처럼, 아이들의 목소리는 희망처럼 다가온다. 어쨌든 아주 반가운 세상의 소리이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었다.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별이 있기 때문이고, 땅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있기 때문이며,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어린이가 있기 때문이다.” 꽃눈이 내리는 좋은 계절이다.

지난해까지 나는 수녀님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한 작은 생명의 움직임에 마음을 쏟고, 어떻게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 것인지를 고민하며 살았다. 이제 다른 삶의 자리에서 적응해가면서 나는 농촌살이에 최적화되어 있던 내 태도에 새롭게 적응해가는 과정에 있다. 예수님의 가엾은 마음을 풀 한 포기에서, 강퍅해지는 흙에서도 함께 느끼며, 품어주고 쓸어줄 수 있도록 길들었던 내 두 손이 새로운 방향을 찾는 듯하다.

삼척 땅을 밟고 왔다. 너무 아픈 땅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나는 오히려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 아름다운 바닷가를 파헤쳐 바다를 오염시키는 석회암을 바다에 붓고 바닷물의 방향을 돌리고, 거대한 장비들을 곳곳에 설치하고 있었다. 마치 멀쩡하게 아름다운 내 몸에 팔 자르고 다리를 자른 다음 철근으로 의족과 의수를 달아놓으려는 듯했다. 아, 가슴이 무너졌다. 전 세계가 ‘지속가능성’을 말하며 미래를 생각하는 행동으로 탈핵과 탈석탄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이 눈감고 귀 닫고 가려는 듯해 보였다. 본래 있었던 모래사장에 붙여진 인공 모래사장을 걸을 때에 그 악취와 살을 따갑게 만드는 안 좋은 모래를 느끼며 내 안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금 돈과 편리함 때문에 혹은 ‘무관심의 동의’로 부모와 형제, 자식을 죽이고 자신마저 죽이며, 이웃과 다른 뭇 생명을 죽이는 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전에 나는 그저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이 모래사장을 걸었었다. 바다에서 자라고 그 바다의 아침노을, 저녁노을이 가르쳐주는 지혜를 배우며 자란 나에게 바다는 내 몸에 흐르는 피와도 같이 다가온다. 바다의 숨결 같은 파도와 함께 숨을 쉬며 찬미가를 불렀었던 기억은 나에게 빵을 나누는 엠마오의 기억으로 항상 샘솟는 기쁨을 주며 주님과 함께 걷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바다가 울부짖고 있다. 너무 아프다고 울부짖고 있다. 모두를 살리는 생명줄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통사정하고 있다. 아픈 통증을 내 몸으로 느끼며 사실 나의 숨이 달라졌다. 그러니까 몸의 한 부분이 아프면 숨도 가빠진다는 것을 깊이 느끼는 시간이다.

바다를 마음으로 쓸어주며, 먹먹한 가슴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눈치 보고 편승하려는 언론과 삶의 고단함으로 쉽게 책임을 위임하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마치 어두운 다락방이 안전하니 나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답답해도 참고 죽은 듯이 살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처음 목격한 이들은 바로 여인들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빈 무덤을 보고 희망의 발걸음을 옮겨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한다. 다락방에 숨어 꼭꼭 닫아걸었던 문을 열고 제자들이 나오도록 힘없은 여인들이 문을 두드렸다. 이 여인들은 이미 예수님으로부터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랑을 배웠다. 예수님께서는 그냥 주저앉아만 있을 수 없도록 이 여인들 안에서 일어나신다. 일으켜 세우신다. 그리고 제자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오늘 저 죽어가는 바다를 위해 ‘삼척을 살려달라’는 피켓을 들고 매일 바다를 걷는 몇몇 시민들이 바로 이 여인들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 여인들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고 일어나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갈 것인가, 아니면 다락방에 안전하게 앉아 있을 것인가? 부활!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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