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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영상 교리] (1)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가톨릭 영상 교리] (1)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영원한 충만함’은 하느님 안에서 찾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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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7 발행 [1658호]

가톨릭평화신문은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가톨릭 영상 교리’를 연재합니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ㆍ가톨릭평화방송이 제작한 가톨릭 영상 교리는 총 47편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 교회란 무엇인가 등 신앙 입문을 위한 기초부터 십자 성호, 미사, 성사, 십계명, 묵주기도 등 전례와 신앙생활을 위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당에서 실제로 거행되는 전례와 교회 예식, 공동체 모임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풍부하게 전해 신자 재교육과 예비 신자 교육을 위한 좋은 자료가 될 것입니다. 또한, 금주의 성인, 금주 교회의 역사, 교리 상식 등을 전하며 지면을 통한 신앙의 벗으로 자리매김하겠습니다.






존재에 대한 궁금증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생각해봅니다. 또, 내가 사는 목적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면서 흔히들 안정적인 직장이나 물질적 풍요, 권력이나 명예를 열심히 좇지만 무엇인가 많이 부족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왜 우리의 존재나 삶의 목적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걸까요? 나아가 창조주의 존재나 진리와 아름다움, 믿음, 희망, 사랑 같은 것을 갈망하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가, 아니 모든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체를 지닌 존재로서 우리는 필요한 많은 것을 찾습니다. 기본적인 생활을 하려니 의식주를 찾고, 의식주를 해결하려니 돈을 찾고, 돈을 잘 벌려니 능력과 힘을 찾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사랑받고 싶어 하고, 사랑하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실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쉽습니다. 불만도 쌓입니다. 어떨 때는 삶이 괴롭고 힘듭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잠시나마 만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끔이긴 해도 충만함을 느끼는 때가 있습니다. 간절히 바라던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로부터 크게 인정을 받았을 때, 누군가와 깊은 사랑의 일치에 빠졌을 때. 우리는 그 순간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순간이 언제나 짧게 끝나고 맙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원히 행복하고, 오래도록 멈추지 않고 만족할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아직은 잘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안에는 ‘영원한 충만함’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것을 자꾸 갈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에 대한 갈망

그런데 잠깐! 도대체 이 갈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내가 만든 것일까요? 누가 심어놓은 것일까요? 왜 우리는 순간적인 즐거움을 좇으면서도 영원한 행복에 목말라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서 가톨릭교회는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새겨져 있다. 인간은 하느님을 향하여, 하느님에게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원한 충만함’에 대한 갈망은 곧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고, 그 갈망은 또 우리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깊이’ 새겨놓으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또 가톨릭교회는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늘 인간을 당신께로 이끌고 계시며 인간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영원한 충만함’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하! 그랬었구나! 이제야 뭔가 풀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우리에게는 뭔가 ‘영원한 충만함’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이 있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며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우리 마음속 깊이 새겨두시고, 이를 통해 계속 이끌고 계시고 부르고 계시니 말입니다. 우리는 또 그 ‘영원한 충만함’을 우리 안에서는 도저히 찾을 길이 없는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나 애타게 찾고 끊임없이 추구하는 진리와 행복, 즉 ‘영원한 충만함’을 오직 당신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다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에 대한 갈망으로, 달리 말하면 ‘영원한 충만함’에 대한 갈망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어서 보라고, 이제는 알아채라고 부르고 또 부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찾고자 하는 모든 것이, 다 나에게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우리의 응답입니다. 여러분의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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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안셀모 St. Anselm, 4월 21일, 1033~1109.
이탈리아 출생. 주교학자.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 

성인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아오스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엄격한 종교교육을 받았습니다.

15살에 수도원에 들어가려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고, 종교적 열의를 잃고 신앙생활을 멀리하며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모두 사망한 뒤 1060년 수도원에 정식 입회해 학문 연구에 몰두하고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사상과 강의로 이름을 널리 떨쳤습니다.

성인은 1078년 수도원장에 선출됐고 유럽지역 청년과 수많은 이들이 그의 명성을 좇아 몰려들었습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 등에 많은 수도원을 설립하며 복음 전파에 힘쓰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 최고의 신학자이자, 스콜라 철학의 대가로 손꼽히는 성인은 하느님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인은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사고(思考)할 수밖에 없다는 정의에서 출발해 하느님을 ‘더 이상 사고될 수 없는’ 존재로 설명했습니다.

성인은 또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이성주의를 신학과 접목시키며 계시와 이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후대에 길이 남은 수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특히, 인간의 개념과 하느님 존재를 증명한 「독어록」(Monologium)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093년 영국왕 윌리엄 2세는 많은 이들에게 추앙받는 성인을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은 대주교로서 영국 왕이 교황과의 관계를 멀리하며 성직자들을 직접 임명하는 데 반대하고 교회 내 노예 매매를 금지하는 등 영국 교회 개혁에 칼날을 들이대 정치적 분쟁에 휘말리게 됩니다.

성인은 1494년 성인품에 올랐으며, 1720년 클레멘스 11세 교황에 의해 주교학자로 선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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