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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입국 도우려 다시 뱃길에 오른 김대건 신부, 결국 체포돼

선교사 입국 도우려 다시 뱃길에 오른 김대건 신부, 결국 체포돼

[신 김대건·최양업 전] (46)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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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발행 [1661호]
▲ 김대건 신부는 서해를 통한 선교사 입국로 개척을 위해 강화,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 등을 여행하다 순위도 등산진에서 체포됐다. 사진은 서해가 바라다 보이는 소청도 공소에 세워진 성 김대건 상. 이승선 기자



해로 개척을 위해


김대건 신부는 1846년 4월 12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곧바로 페레올 주교의 지시에 따라 선교사 입국을 위한 해로 개척에 나섰다. 여행 준비 기간 페레올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에게 보낼 보고서와 편지를 라틴어로 썼다. 김대건 신부는 선교사들의 입국에 꼭 필요한 조선 지도 2점을 그렸다. 김대건 신부는 서해안 섬들과 바위, 주의할 것들을 꼼꼼하게 지도에 적었다. 그리고 조선대목구 부주교로 임명된 베르뇌 신부와 스승 메스트르 신부, 리브와 신부, 중국인 교우 2명 앞으로 라틴어와 한문 편지를 썼다.

김대건 신부는 1844년 12월 부제품을 받고 1845년 1월 15일 한양에 도착한 후 106일 동안 한양 소공동 돌우무골에 머물 때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활용할 ‘조선전도’를 이미 그린 바 있다. 당시 조선전도도 지금처럼 중국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입국할 선교사를 위해 서해와 남해의 섬 위치를 비교적 상세히 그려넣었다. 그러면서 서해안 섬과 바위, 주의할 것들을 적어 1845년 4월 7일 리브와 신부에게 보냈었다. 김대건 신부의 이 지도는 교회 밀사를 통해 1846년 12월 중국 변문에서 조선 입국을 기다리던 메스트르 신부에게 전달돼 홍콩에 있던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전해졌다. 리브와 신부는 이 지도가 조선 선교사들의 입국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여러 복사본을 만들었다. 1846년 4~5월 김대건 신부가 제작한 조선 지도 2장은 김 신부가 체포돼 조정에 압수된 반면, 부제 때 그린 조선전도가 김 신부가 순교한 후 몇 달 뒤 메스트르 신부에게 전달되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여행 준비가 모두 마무리되자 김대건 신부는 복사 이의창(베난시오)과 함께 5월 12일(음력 4월 17일) 마포에서 뱃일하는 임성룡(베드로)을 찾아갔다. 임성룡은 지난해 10월 김대건 신부와 함께 강경에서 새 배 한 척을 사서 운영하고 있었다. 김 신부는 그에게 백령도까지 서해안 여행을 다녀오자고 말했고, 6냥 5전으로 쌀 한 가마를 사주었다. 배는 이틀 후인 5월 14일 한양 마포나루에서 출항했다. 김대건 신부와 복사 이의창, 선주 임성룡, 뱃사람 엄수, 그리고 김성서(요아킴), 노언익, 안순명(베드로), 박성철(베드로) 등 8명이 배에 올랐다. 임성룡과 노언익은 라파엘호를 타고 김대건 신부와 중국 상해를 다녀오며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이들이다.






조기 때문에 발이 묶이다

여행은 순조로웠다. 순풍을 타고 연평도 앞바다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김대건 신부는 더 상세한 지도 제작을 위해 한강 마포나루에서 강화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뱃길과 주변 지형을 꼼꼼하게 기재했다. 불행히도 강화에 이르렀을 때 이 지도를 펴놓고 지형을 살피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회오리 때문에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다. 김 신부는 돌아올 때 다시 그리기로 하고 강화에서부터 새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김대건 신부 일행은 11일간의 항해 끝에 5월 25일 연평도에 닿았다. 선주 임성룡은 돈벌이하기 위해 조기 39두름(780마리)을 샀다. 그런 다음 조기를 되팔기 위해 5월 27일 옹진 순위도 등산진으로 갔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조기를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조기를 굴비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사공 한 명이 소금을 사서 조기를 절이는 동안 김 신부 일행은 소강과 마합포를 거쳐 굴비를 말릴 땔감을 사기 위해 장연 터진목 포구로 갔다.

김대건 신부는 일행이 장을 보는 동안 언덕에 올라 소강과 마합포 일대 섬 지형을 살폈다. 그런 다음 소청도와 대청도를 돌아 백령도 근처로 갔다. 그곳에 중국 산동에서 온 고기잡이배 100여 척이 있었다. 김대건 신부는 백령도 해안과 산꼭대기에서 조선 수군들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어 중국인 선원들이 뭍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을 파악했다.

김대건 신부는 5월 29일 백령도에서 떨어진 마합포 앞바다에 이르러 수군들의 감시가 소홀한 것을 인지하고 임성룡에게 배에 달고 온 작은 배를 몰고 중국 어선들이 있는 데로 가자고 했다. 이날 김 신부와 함께 보조선에 탄 이들은 임성룡과 이재의, 김성수, 엄수였다. 이들 다섯은 한밤중에 중국 어선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김 신부와 일행은 선단에서 조금 떨어져 고기잡이하고 있던 중국 어선에 잽싸게 올라탔다.

김대건 신부는 중국인 선장과 중국어로 길게 이야기를 나눈 후 다시 보조선으로 돌아와 급히 타고 온 배로 되돌아왔다. 배에 오른 김대건 신부는 이재의에게 자신의 말을 한문으로 받아 적게 했다. 한문 편지가 완성되자 다섯 명은 다시 그 중국 어선으로 갔고, 김 신부는 페레올 주교의 보고서와 편지 6장과 조선 지도 1장을 담은 편지를 선장에게 전했다. 이어 김 신부는 감사의 표시로 선장에게 인삼을 선물했고, 선장은 답례로 중국 가위 4~5개를 김 신부에게 줬다. 김 신부는 선장에게 “만일 편지를 광동의 우리 집에 전한다면 마땅히 후사할 것”이라고 단단히 이른 후 하선했다.

김대건 신부는 다음날인 5월 30일 장연 목동에 도착해 또 다른 중국 어선을 찾아가 조선 지도 1장과 선교사들과 중국 교우들에게 자신이 쓴 라틴어 편지 1장과 한문 편지 2장을 전했다. 이날은 임성룡과 노언익, 김성서가 김대건 신부를 동행했다. 5일 동안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문서를 두 차례에 걸쳐 모두 성공적으로 중국 어선에 전한 김대건 신부 일행은 6월 1일 굴비 작업을 하는 순위도 등산진으로 돌아갔다.


▲ 김대건 신부는 1846년 5월 선교사 입국로 개척을 위해 서해를 여행하던 중 체포돼 순교했다. 사진은 백령도 성당에 모셔진 김대건 신부 성해. 이승선 기자



체포된 김대건 신부

악마는 늘 교회의 선익을 시샘한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풀리던 일이 등산진에 도착한 뒤 꼬이기 시작했다. 굴비를 만들기 위해 해변에 늘어놓았던 조기가 채 마르지 않아 김 신부 일행은 그만 발이 묶였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체되자 이재의는 박해가 두려워 7년 동안 숨어 있던 집에 맡겨둔 돈을 찾으러 가겠다며 노언익과 함께 하선했다. 훗날 이재의가 하선한 이유에 대해 김대건 신부는 포도청 (14번째) 공초에서 “육지로 해서 먼저 보낸 것은 가사를 보살피고 의복을 지어 두는 등의 일을 살펴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진술했다. 김대건 신부의 진술이 돈을 받으러 갔다는 이야기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아마도 김대건 신부는 시간이 지체됨에 따라 한양에서 걱정하고 있는 페레올 주교에게 모든 정황을 알리기 위해 믿음직한 이재의와 노언익을 먼저 보냈을 것이다.

6월 5일 바람조차 잠잠한 고요한 날이었다. 등산진 첨사 정기호와 포졸들이 중국 어선들을 서해 어장에서 몰아내기 위해 등산진 포구에 있는 배들을 징발하려고 김대건 신부 일행이 탄 배에 올라 시비가 붙으면서 이 고요는 깨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김대건 신부는 배 위로 뛰어 올라와 한양 양반이라고 밝히면서 첨사에게 “내 배는 내가 사용해야 하고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포졸들이 김 신부에게 욕을 퍼부었고, 김 신부도 이에 지지 않았다. 김 신부의 기세에 움츠린 포졸들은 배에서 내렸으나 아전이 양반의 생김새가 수상하다며 밤에 다시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들은 기녀들 여럿을 데리고 김대건 신부가 있는 배로 왔다. 이 모습을 본 김 신부는 격분하자 포졸들이 김 신부에게 달려들었다. 격한 몸싸움 도중 머리채를 잡힌 김대건 신부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 뽑혀 상투가 풀렸다. 그러자 중국에 있을 때 변발한 흔적이 남아 있어 포졸들에게 밀입국한 중국인으로 체포됐다. 임성룡과 엄수도 함께 붙잡혔다. 이 광경을 숨어서 지켜본 김성서와 안순명, 박성칠은 몰래 도망쳤다.

등산진 첨사 정기호는 김대건 신부의 짐에서 천주교 서적과 성물, 중국제 물건이 나오자 5일 후 6월 10일 황해 감사 김정집이 있는 해주 감영으로 압송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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