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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41. 봄바람이 분다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41. 봄바람이 분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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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발행 [1661호]
베란다에 노는 화분이 있어 상추씨를 뿌렸다. 면적은 좁지만 혹시나 싶어 비교적 많은 씨앗을 뿌리고 덮었더니 단 이틀 만에 솜털 나오듯 연둣빛 새싹들이 소복이 자라고 있었다. 쉬고 있는 또 다른 화분에는 마른 고추를 터서 씨를 흙에 묻어 두고는 물을 뿌렸더니 이내 고추가 올라오고 있었다. 신기하고 대견스러워서 이 기쁜 소식을 알리니 곳곳에서 모종을 달라고 하신다. 제법 많이 자란 상추와 고추 모종들을 속아서 나눠드리고, 또 일부는 강된장을 만들어 여린 상추잎을 얹어 봄의 생명력을 우리 몸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추 모종 몇 개와 고추 모종 몇 개만 남겨 돌보기로 하였다.

사실 아무 계획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문득 생각해보니 열두 해 동안 땅을 일구며 살았다는 것이 몸에 배 습관처럼 나오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주고 베란다 창문을 열어 봄바람이 들어오도록 하니, 베란다에 자라고 있는 생명들이 들판인 듯 춤을 추며 쑥쑥 올라오고 있다. 물과 햇빛만 쏘인 생명은 안전하게 빨리 자라지만 웃자라서 열매 맺기 전에 금세 시들해지곤 한다. 그런데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아직 찬바람을 맞은 생명들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오히려 단단하게 자리 잡게 된다. 정말 신기하다. 본래 이렇게 어우러져 살았던 자기 근원을 기억해내는 듯 온몸으로 바람을 맞아 제 뿌리를 정돈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생명의 움틈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사무실 창가에 있는 화분마다 꽃이 피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 봤을 때, 비리비리했던 생명들이 제법 건강한 모습이 되었다. 사실 우리가 생명들에게 특별히 한 것이 있다. 아무리 봐도 약해 보여서, 이삼일 묵힌 쌀뜨물을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양제 먹이듯이 부어주니 금세 튼실해진 것이다. 물론 열린 창으로 들어온 봄바람이 꽃이 피는 봄임을 알렸을 것이다. 봄바람….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숨결이 모두를 살게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다.

1958년 교황이 되신 요한 23세께서는 즉위 3개월 만인 이듬해 1월에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라고 하시며 공의회를 선포하셨다. ‘아조르나멘토’는 기존에 있던 단어가 아니었기에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두가 궁금했는데, 이때 교황님께서 하신 행동이 중요했다. 교황님은 창문을 여시며 “새로운 바람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도록”이라고 하셨다고 한다. 곧 아조르나멘토는 ‘현재화’, ‘현대 세계에 대한 쇄신과 적응’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문이 닫혀 있으면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안전할 수는 있지만 단절되어 있고, 생명 유지는 되지만 웃자라서 결국 시들해지는 상추처럼 건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교회가 생명력을 찾기 위해서는 바람이 들어오도록 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렇게 교회 안에 쇄신의 봄바람을 맞이했다. 그리하여 교회는 교회의 실재인 하느님 백성이 누구인지 자기인식을 하는 시간을 가졌고, 교회가 자기 몫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귀 기울였다. 교회 안에 불어온 이 바람은 성령의 바람이었다. 교회는 쇄신의 걸음을 딛기 위해 시노드 정신 안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다. 이 교회는 자만과 오기와 분노, 편협한 정치적 신념에서 나오는 고함이 아닌, 가난한 이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들과 함께 걸으며 노래하는 교회이다.

봄바람 순례단의 문정현 신부님은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우리나라의 아픈 땅과 가난한 이들을 찾으며, 그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먹고, 길 위에서 노래하며 그 모든 이들이 마음의 창을 열고 ‘희망의 봄바람’을 맞이하게 하였다. 아픈 땅에 시들했던 생명들이 다시금 생기를 찾는 느낌이다.

주님께서 너무도 사랑하시는 그분의 어린 양 떼들을 잘 돌보라고 부름 받은 이들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들에게 주님의 음성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님의 숨, 주님의 영, 그분의 바람이 양들에게 이르도록 그들에게로 다가가야 한다. 지금 봄바람이 분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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