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최현순의 교회, 세상의 혼처럼] 교회, 어떻게 ‘세상의 혼’일 수 있을까

[최현순의 교회, 세상의 혼처럼] 교회, 어떻게 ‘세상의 혼’일 수 있을까

최현순 데레사(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

Home > 여론사람들 > 평화칼럼
2022.05.15 발행 [1662호]



신학도들과 혹은 교회 안에서 수도자들이나 신자들 그리고 청년들과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고 그분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는 사람에게나 듣는 사람에게나 신 나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가톨릭 재단 대학인지라 의무적으로 그리스도교 관련 과목에 들어온 청년을 마주할 때면 한겨울 온실 밖으로 갑자기 나온 때처럼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는 이들에게 어떻게 2000년 전에 살았던 나자렛 청년 예수의 삶과 메시지가 그들의 삶에 ‘의미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세기 전 성 요한 23세 교황이나 공의회에 모이셨던 3000여 명의 주교님들의 고민에 들어가는 것 같다.

나 혼자 믿고 행복하면 될 것 같은데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내가 속한 교회가 무엇인지 내가 왜 그리스도인인지 배웠기 때문이다.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위로받고 행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위로와 용기, 살아갈 힘을 받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기쁨을 누리도록 선택받았음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그 기쁨에 초대하라는 사명을 포함한다.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선택과 파견은 동전의 양면이다. 모세, 예언자들, 사도들, 수도회의 창립자들 등등. 이들에게서 이 특성은 뚜렷하다. 그리고 선택과 파견의 불가분리성은 우리처럼 소박한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세상 끝날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은 당신의 모든 제자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씀처럼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 제외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끼리만” 기뻐해야 할 진리가 아니라 “지붕 위에서” 선포되어야 할 진리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 이 사명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이 세상은 물질적인 것을 포함하여, 가치관, 의식, 생활방식도 너무나 빨리 변한다. 이 변화는 예측 불허해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 아니 따라잡는 것조차 버겁다. 게다가 우리가 과연 동시대인인가 싶을 정도로 세대 간 차이가 크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세대를 나누어, 베이비붐세대, X세대, M세대, Z세대, 그리고 2010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은 이제 알파세대라고 부른다. 젊은이들을 MZ세대라 묶어 부르지만 이들이 한 카테고리에 들던가? Z세대에 속하는 청년들조차 서로 너무 다르다.

많은 사람이 웬만하면 남의 삶에 들어가려고도, 들어오게 하려고도 않는다. 사랑은 노력과 희생, 인내가 필요한 것이라고 하면, 그런 고달픈 사랑은 하고 싶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양보는 내가 손해 보기 전, 바로 거기까지만 하겠다고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젊은이들의 이런 개인주의를 베이비붐세대와 X세대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 세대 차이는 점점 감소 중이다.

이 속에서 ‘섬김’이 인생의 모토였던 분, 아버지의 뜻이라면 비합리적 대우와 모욕도 받아들이고 기꺼이 자신을 바칠 수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어떻게 선포할까? 그렇다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이 진리를 축소할 수도 왜곡할 수도 없지 않은가? 우리가 선포해야 할 진리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그리스도”이니 말이다. 이 변화무쌍한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이 항구한 진리를 선포해야 할까? 이것이 19세기 급변하는 근대사회 속에서 가톨릭 지성인들이, 20세기 요한 23세 교황, 공의회의 주교들, 그리고 이후 교황들의 고민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다. 사목헌장 40항의 표현을 빌자면 교회, 어떻게 “세상의 혼”일 수 있을까?



ⓒ 가톨릭평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보기
첨부파일
발행일자조회
오늘의 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