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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유스티노 순교자

(6월 1일) 100/110?~165년, 팔레스티나 출생 로마 선종, 호교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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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29 발행 [1664호]





2세기 호교론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꼽히는 성인은 그리스도교 최초의 호교론자이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입니다. 호교론은 일반적으로 외부로부터 종교에 가해지는 비난·공격에 대한 어떤 행동이나 진리의 변호를 하는 것으로 변증론이라고도 불립니다.

성인은 100~110년경 팔레스티나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스토아·아리스토텔레스·피타고라스·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이사리아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에는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했습니다. 성인은 저서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당시 심경에 대해 “(노인과 이야기를 나눈 뒤) 내 영혼 안에 갑자기 섬광이 일어났고, 나는 예언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해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제2 호교론」에서 “플라톤 학파의 제자였을 때 그리스도인을 비난했었는데,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용감한 순교자를 보면서 나는 그들이 악이나 탐욕 가운데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성인이 에페소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경이었습니다. 이후 구도자가 아닌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평신도지만 그리스도인의 스승이자 복음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소에서 유다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했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를 저술했습니다. 순회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가 있는 로마에 도착한 뒤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는 후에 호교론자가 된 타시아노가 있습니다.

성인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에 항의하는 두 편의 「호교론」을 썼습니다. 그러나 165년에 크레센스라는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해 로마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에게 고발됐고,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됐습니다. 이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하다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그가 영웅적인 순교자의 삶에 감동받은 것처럼 성인 또한 그러한 삶을 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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