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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녀 체칠리아 (11월 22일)

[금주의 성인] 성녀 체칠리아 (11월 22일)

?~230?년쯤, 이탈리아 출생, 동정 순교자 교회 음악과 음악가의 수호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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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0 발행 [1687호]



여러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온 체칠리아 성녀의 순교록은 5세기 중엽에 기록됐습니다. 이에 따르면 성녀는 로마 원로원 가문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면서 평생 동정을 지킬 것을 서약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의해 당시 이교도였던 귀족 청년 발레리아노 성인과 강제로 결혼하게 됐습니다. 성녀는 결혼식이 끝난 뒤 남편에게 자신은 동정 서약을 했으며 천사의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발레리아노 성인은 그 천사를 보게 해주면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그를 성 우르바누스 1세 교황에게 보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도록 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돌아온 그는 백합으로 장식된 관을 쓴 두 천사가 성녀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고, 결국 성녀의 동정서약에 동의했습니다. 또한, 발레리아노 성인의 동생인 티부르시오 성인도 후에 천사를 보고 세례를 받게 됐다고 합니다.

세례를 받은 성인 형제는 매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로 인해 행정관의 미움을 사 체포됐습니다. 행정관은 성인 형제에게 신전에서 제사를 바치라고 강요했으나, 그들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행정관의 강요를 거절한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성인 형제는 심한 매질을 당하고는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막시모 성인과 함께 참수되었습니다. 막시모 성인은 발레리아노 성인 형제가 보여준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했다고 합니다.

체칠리아 성녀는 순교한 이 세 명의 장례를 지낸 뒤 체포되어 배교를 강요당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이미 막대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고, 또 자기 집까지 교회에 봉헌한 상태였습니다. 굳은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한 행정관은 성녀를 사형에 처했습니다. 사형 방법은 당시 사형수들에게 흔히 적용된 것으로 욕실에 가두어 쪄서 죽이는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목욕실에 가둔 지 24시간이 지나도 성녀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행정관은 성녀의 목을 베기로 다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목이 베이고 나서도 3일 동안이나 숨이 붙어 있다가 순교했습니다.

성녀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해 교회 안에서 보편화됐고, 그의 행적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만 성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의 남편인 발레리아노 성인을 비롯한 다른 성인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 치하에서 순교했다고 기록된 로마 순교록을 바탕으로 성녀의 순교 연대를 추정할 뿐입니다.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인 성녀는 교회 미술에서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종종 표현됩니다. 원치 않았던 결혼식 때 축가가 연주되는 동안 하느님을 향한 마음으로 노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녀는 1584년 로마에 음악원이 세워졌을 때 이 학원의 수호자로 지칭됐고, 이후 성녀를 교회 음악의 수호자로 공경하는 것이 보편화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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