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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Q60. 사회교리란 무엇인가요?

재생 시간 : 07:11|2010-10-05|VIEW : 825

교회의 사회참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많은 경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사회에 기쁜 소식을 실현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도 많은 사회참여의 역사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895년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입교 후 그는 황해도 일대를 다니며 선교를 합니다. 1905년 ...

교회의 사회참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부터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지요. 많은 경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사회에 기쁜 소식을 실현해 왔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도 많은 사회참여의 역사가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1895년 토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입교 후 그는 황해도 일대를 다니며 선교를 합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학교를 세우고 후학을 양성했으며, 연해주로 망명하여 본격적으로 독립군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 잘 아시는 것처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게 되지요. 사형선고를 받은 후 고해성사와 종부성사를 받고 장남인 분도(베네딕도)를 성직자로 키워줄 것을 당부하는 서신을 남긴 뒤 총살로 순국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의사로 기억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신앙인 안중근은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 대한 시복 운동까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대교구 총대리 염수정 주교님께서는 가톨릭포럼에서 "서울대교구는 안중근 토마스 의사에 대한 시복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20세기 초 교회의 가장 활발한 사회참여의 모범이 되었으며,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분들은 많은 존경을 받고 있으며, 그분들의 사회참여를 비난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교회의 성직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의 모습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가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입니다. 특히 윤리와 도덕, 정의와 환경의 문제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런 교회의 사회참여의 원칙을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사회교리입니다. 즉 교회는 예수님의 사랑이 사회에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하느님의 창조 질서와 정의가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공동선이 깨져 나가는 사회에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편에서는 교회는 신앙의 문제만 이야기 해야지, 사회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물론 일부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신앙은 신앙 일뿐이라는 편견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의사도 그런 말을 들었고, 7-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교회의 성직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많은 신자들도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언제나 교회는 사회의 밝은 빛과 썩지 않는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알아둡시다>

교회는 인간 발전에 도움이 되고 복음화에 기여하도록 사회 경제 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 원칙과 실천 지침들을 복음의 빛에 비추어 제시해왔습니다. 성경과 성전에 바탕을 둔 이 가르침들은 이미 초기교회부터 있었으나 특히 1891년 교황 레오 13세가 '노동헌장'이라고도 불리는「새로운 사태」를 발표한 이후 역대 교황들과 교황과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의 교도권을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이를 통틀어 사회교리라고 부릅니다. 사회교리는 교회가 믿어야 할 신앙의 도리로 가르치는 믿을 교리와는 다릅니다. 믿어야 할 신앙 진리들은 사회 변천이나 시대적 상황에 관계없이 한결같이 믿음으로 고백해야 하지만, 사회교리는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일부에서는 사회교리란 말 대신에 사회적 가르침, 혹은 가톨릭 사회론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