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민신부의 신학하는즐거움

제13회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요?

재생 시간 : 46:32|2011-02-28|VIEW : 5,333

제2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자유 이야기☞ 신학 -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심 주제들에 대한 입문적 설명들 (원론적, 학술적 담론들 중심) ☞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들 (단순한 신심과 영성에 앞서 생각하는 신앙의 중요성 강조)제2부에 대한 소개 ●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우리들이 믿고 있는 바...

제2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자유 이야기

☞ 신학 -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심 주제들에 대한 입문적 설명들 (원론적, 학술적 담론들 중심)

☞ 우리들의 신앙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들 (단순한 신심과 영성에 앞서 생각하는 신앙의 중요성 강조)

제2부에 대한 소개

●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우리들이 믿고 있는 바, 살아가고 있는 신앙에 대한구체적인 주제들을 신학으로 풀어보기

● 앞선 입문적 주제들을 다시 상기하면서 신학적 담론들을 펼쳐보기

● 유의사항

    ☞ 신학은 어떤 정답을 찾기보다, 우리들의 신앙의 결단을 촉구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
    ☞ 교회의 교리를 깊이 이해/신앙의 미래적 비전을 위한 예언자적 소명

주제소개 :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요?

1. 출발점 :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 세상의 모순과 인생의 불공평에 대한 한탄

    ① 나는 왜 이렇게 팔자가 사나울까? - 팔자타령, 인생 팔자소관
        ● 팔자가 기구하다, 사람 팔자 시간문제다 ⇒ 인생이 꼬인 사람들, 결혼의 선택의 실수, 보증을 잘못 서서 내내 가난으로 고생
        ● 팔자 타령하다 ⇒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늘 불평만 늘어놓음
        ● 팔자가 좋다. ⇒ 세상 걱정 없이 먹고 사는 사람 (부모 잘 만나서 호강하는 2세들
        ● 팔자에 없다 ⇒ 부모덕 없는 한탄, 시기, 질투 (한국 드라마의 주제) : 한국인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 항상 위만 바라보고 사는 삶, 가끔은 눈 높이를 낮추는 연습이 필요
        ● 팔자를 고치다 ⇒ 결혼운, 재산운, 명예운이 갑자기 바뀌는 것
             ☞ 팔자(팔자) : 사람의 한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 ⇒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해석하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② 왜 나만 이렇게 재수(財數)가 없을까?
        ● 재수 - 재물이 생기거나 좋은 일이 있을 운수
        ● 왜 내가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나? -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 역전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대한 비관
        ● (TV, 대중매체) - 평생을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들이 너무 많은 우리네 삶의 모습들
        ● (영화 이야기) - 한강에서 투신했는데, 밤섬에 갇혀 무인도 생활체험 이야기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사람들)

    ③ 신앙인의 팔자와 재수타령
        ● 하느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면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 가진 사람들은 더 많이 갖고, 못 가진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우리 세상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할까?
        ● 하느님은 당신 맘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시는 거 아닌가? - 하느님도 편애를 하시는 것은 아닐까? 나를 버리신 건가? 아니면 하느님은 나만 미워하시나?

2. 세상의 모순과 불공평에 대한 종교적 담론들

● 세상의 모순과 불공평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나? ⇒ 동양의 운명론에 대한 생각들

1) 종교의 운명론적 입장 : "세상의 모순과 불공평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속한다"

⇒ 종교의 기능 : 인간의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도록 위안과 안식을 제공

    ① 무교의 점술: 인간의 운명이 우주의 원리/신령의 뜻에 입각하여 정해져 있음 (사주팔자/신점) ⇒ 부적, 푸닥거리, 굿 : 재액초복 - 한풀이와 복나눔의 가능성 - 팔자를 바꾸는 것은 아님

    ② 불교의 업(業) : 윤회의 인생 속에서 인간의 선악의 행위가 나은 결과, 업보 - 이생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에 순응 : 내세의 삶을 위한 준비로 이해

    ③ 그리스도교의 예정설(豫定說) : 하느님은 우주의 사물과 인간의 역사적 사건들도 미리 예정해놓으셨다
        - 하느님의 섭리와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인의 태도가 중요
        - 삶의 태도와 표양에서 드러남)
        ⇒ 신중심적 사유방식 (모든 것이 하느님의 뜻)

2) 운명론에 대한 무신론적 비판

    ① 포이에르바흐(L. Feuerbach, (1804-1872): 신은 인간의 자기 투사 (하느님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느님을 만들어 낸 것임) : 기독교의 본질 ⇒ 종교는 인간이 이룰 수 없는 소망을 신에게 투사해서 위안과 안식을 얻고자 하는 자기기만

    ② 막스(K. Marx, 1818-1883)의 인본주의 무신론 : 종교는 민중의 아편 : 인간이 종교를 만들어내는 것이지, 종교가 인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님 ⇒ 신은 강력한 마약, 종교는 인간 본질의 환상적 구현

    ③ 레닌(V. Lenin 1870-1924): 민중의 아편에서 민중을 위한 아편으로 이해  ⇒ 신 신앙을 통해서 노예화와 소외를 유지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지배계급의 도구

3.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자유 문제

1) 물음 : "정의로우시고 사랑이신 하느님은 세상의 모순과 불공평을 왜 외면하시는가?"

    ① 하느님의 사랑은 왜 보편적이지 않은가? - 하느님의 속성에 대한 비판

2) 하느님의 속성에 관하여 :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가) 하느님을 찾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

          ① 성경의 계시를 인간의 자기 체험에서 발견
              ● 신학의 새로운 방법론 - 인간학적 접근 방법 : 이유 - 성경의 계시를 외적인 권위로 인정하지 않는 시대
              ● 내면적, 자기 이해적 방법론의 필요성

          ② 인간은 역사적 실존 : 운명적인 삶 - 죽음을 향한 삶
              ● 시간 속의 인간 - 유한한 인간의 자기 체험 : 죽음, 고통, 병, 악, 죄의 체험 - 만족할 수 없는 삶, 평화가 없는 삶 - 구원되지 못한 인생
              ● 미지의 운명을 자신의 목표로 삼을 수 없는 인간의 초월성 :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 - 무한을 향한 삶의 도약 (영원, 선, 평화, 기쁨, 치유의 삶)

          ③ 초월적 인간의 초월론적 경험 : 하느님(거룩하고 무한한 신비)으로 부터 섭리된 인간
              ● 자신의 존재의 근원을 향하도록 섭리된 인간 - "하느님을 떠나서 평화를 찾을 수 없는 인간"
              ● 초월론적 경험(칼 라너 K. Rahner, 1904-1984) : 역사 안의 인간이 신비이신 명백하게 인식되어 있지는 않지만 거룩한 신비이신 하느님을 향하여 무한히 개방되어 있음을 체험하는 것 ⇒ 하느님 은총에로 초대된 인간
              ☞ 예 : 성 아우구수티누스 고백록 : "주여, 당신께서는 나를 당신에게로 향하도록 만드셨나이다. 내 영혼은 당신 품에서 휴식을 취할 때까지 편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④ 하느님의 속성 : 사랑의 속성
              ● 유한한 인간을 무한함, 영원함에 초대해주시는 분, 자신의    속성을 나눠주심 ⇒ 나눔, 초대
              ● 인간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있도록 허락해주심 ⇒ 인간의 자유를 허락 : 하느님이 인간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 - 하느님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
              ☞ 나를 거부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 원수를 사랑하는 신비
              ☞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마태 5, 44-46)
              ● 사랑의 속성 : 소유와 집착이 아닌, 상대의 존재를 수용하는 것 - 보편적인 것
              ☞ 인간의 사랑 체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 - 참된 사랑의 체험 (내어줌의 체험, 기다림, 용서, 인내 : 아낌없이 주는 나무)
              ☞ 우리 시대의 문제 : 소유와 집착에서 오는 행복의 상실 - 더 많이, 더 높이, 더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의 문제 : 행복지수의 저하

3. 세상의 모순과 불공평에 대한 신학적 담론

1) 물음 : 세상의 모순과 불공평도 하느님의 사랑에 속하는가?
    ●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에 대한 문제
    ● 창조질서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뜻의 모순에 대한 비판

2) 인간 자유의 상호 제약성

    가) 모든 인간은 하느님을 향한 존재론적 동일성을 소유
          ① 인간은 역사 안에서 실존적 처지가 동일 : 유한한 삶 - 보편적인 인간의 처지
              ● 하느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인간의 보편성 :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이 숨 쉬는 인간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의 평등성)

          ② 인간의 자유가 하느님을 향하도록 섭리되었으나, 세상 안에서 인간의 자유의 행위가 상호 제약되는 문제
               ● 초월적 자유와 선택적 자유의 충돌 : 선택적 자유의 문제 - 선택은 선택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미련, 분노의 발생
              ● 더 높은 가치를 위한 포기 (먹지 않음의 용기? - 서로를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봄)

    나) 인간 자유의 상호 제약성 : 소유와 선택적 기회의 불균형
          ① 제한된 소유물 (땅, 재화의 한계성): 소유를 위한 투쟁, 지배, 피지배의 모순이 발생 ⇒ 빈자와 부자의 발생
          
          ② 제한된 기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의 제한) : 인간의 이기심, 질투, 왜곡, 기회의 박탈 ⇒ 사회 구조의 모순 발생

     다) 창세기 원역사의 해석 : 죄(罪)의 원인으로서 인간의 자유 (자기 소유의 역사)
          ① 창세기 : 아담과 하와 이야기(창세 3장) - 초월적 자유에 대한 포기
              ● 인간이 하느님의 섭리에서 벗어나려는 욕망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 3, 5) ⇒ 자유의 남용
              ● 죄의 연대성 : "여자가 쳐다보니 그 나무 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것은 슬기롭게 해 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그래서 여자가 열매 하나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자, 그도 그것을 먹었다." (창세 3. 6) ⇒ 죄의 전염성
              ● 존재론적 자기 모순 :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 (창세 3, 12-13) ⇒ 죄를 인정하지 않는 인간

          ② 카인과 아벨 이야기(창세 4장) : 선택적 자유가 낳은 폭력
              ● 제한된 재화와 능력에 대한 몰인정 : "아벨은 양치기가 되고 카인은 땅을 부치는 농부가 되었다." - 기회의 제한적 선택 (누구나 양치기가 될 수 없음)
              ● 자신의 선택과 기회에 대한 불만과 질투, 시기, 폭력의 발생
                  ☞ 하느님이 카인의 제물을 굽어보지 않았음이 그를 미워하셨다는 표현은 아님 : 카인의 호소에 죽음을 면하게 해주심 ⇒ 카인이 하느님을 기다리지 못함 - 스스로 판단하고 단정해버림
                  ☞ "그래서 카인은 몹시 화를 내며 얼굴을 떨어뜨렸다." (창세 4, 2-5) : 폭력의 출발점 (화의 원인 - 인정하지 못함)
              ● 세상의 불의에 대한 무책임과 회피 :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창세 4, 9)

3) 불공평한 세상을 대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

    가) 자유의 재발견: 참된 자유란 선택이 아닌 초월 : 하느님을 향한 가치 선택의 전환 : "무슨 일이나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1고린 10, 23-24)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1고린 10,31)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1고린 10,33)

    나) 사랑의 재발견 : 참된 사랑이란 소유와 집착이 아니라 내어줌, 희생, 인내, 존중의 가치들 ⇒ 세속적 가치들의 향연 속에서 정신적 가치들의 우선적 선택의 용기
          ① 사랑의 가치의 재발견: 영웅적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 속에 발견된 인간의 가치
              ● 소유와 집착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를 살아간 사람들 - 법정 스님의 무소유, 마더 데레사, 이태석 신부님)
              ● 삶의 모순과 불공평을 받아들이며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 빨리빨리 문화에서 느림의 미학 (느리게 사는 법 - 슬로우족, 슬로우 푸드, 귀농현상, 자연과 함께 사는 삶)

          ② 사랑의 찬가 - 고린전 13장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③ 십자가의 역설적 가치의 재발견
              ● 자기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용기 (현실적인 모순에 대한 수용)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 27)
             ● 바오로 사도의 삶과 신앙 :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안에서 찾은 참된 자유와 하느님의 지혜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렇지만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1고린 1, 22-25)

    다)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 교회의 사회 참여
          ① 모순된 세상 속에서 인간의 참된 자유와 사랑의 회복을 위한 연대적 노력이 필요
              ●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교회의 투신 : 하느님의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한 교회의 의무이자 책임 (정치적 관여가 아님) ⇒ 가톨릭 교회가 인권 보호, 대사회적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의 이유
              ● 초월적 가치의 보호와 선포 : 인간의 완성을 위한 도덕적 가치들의 보호와 참된 사랑의 증거적 삶 (십자가의 승리의 선포) ⇒ 순교적이고 예언자적인 소명의 강조 : 박해를 각오하는 교회의 역할
              ● 세상의 모순과 불공평 - 역사적 실존으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현실적 처지
              ● 하느님의 사랑 - 인간에게 선사된 자유 (선택을 넘어 초월적 자유 - 궁극적인 삶의 목표인 거룩한 신비에로 향하는 초월론적 체험)
              ● 세상의 불공평과 모순의 원인 : 인간 자유의 남용 - 자유 행위의 제약성
              ● 교회의 역할 : 참된 자유와 사랑의 재발견, 십자가의 역설적 가치의 재발견 ⇒ 교회의 예언자적 소명에 동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