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 여성에게 말하다

제19회 죽음 : "죽음, 무엇이 두려운 걸까요?"

재생 시간 : 22:47|2011-04-12|VIEW : 2,193

왜 죽음이 두려운 걸까요? 죽음은 정말 끝인가요?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되나요? 죽음 이후의 삶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다만 '언제'죽을지 모를 뿐이며 어느 누구도 죽음의 시기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죽지 않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죽음...

왜 죽음이 두려운 걸까요? 죽음은 정말 끝인가요?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되나요? 죽음 이후의 삶이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다만 '언제'죽을지 모를 뿐이며 어느 누구도 죽음의 시기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죽지 않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죽음을 이해하려면 삶 전체를 이해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삶에 대한 이해가 곧 죽음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죽음은 아직 오지 않는 미래의 사건이 아닌, 이미 항상 내 '앞에 닥침'"이라고 하며 불교에서는 삶이 곧 죽음이며 산다는 것은 곧 죽고 있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과연 '죽음'이 무엇이며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살레시오 성인은 많은 성인들은 의연하고 거룩하게 주님을 찬미하며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합니다.
동시에 졸도로 혼수상태로 이성을 상실하고 광란 중에 죽음을 맞이한 성인들도 많다고 합니다.
즉, 죽음준비란 죽기 직전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박학한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지식을 잃어 깨어나서 무식한 사람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살면서 쌓은 모든 덕행은 그대로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상실의 여정은 '죽음' 그 자체를 슬퍼하고 절망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살아생전의 삶을 바라보며 추억하는 여정이라 하겠습니다.
비록 준비 없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쌓은 인격과 덕행은 어디로 사라지지 않기에 그 자체가 죽음준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살레시오 성인은 '죽음'에 대한 생각은 아주 경건하고 권고해야 하는 거룩한 행위임을 말합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삶'을 보내자고 초대합니다.
그래서 매일 밤, 침대에 가면서 '죽음의 리허설'을 하라고 합니다.
잠을 자러 갈 때 '침대를 무덤'으로 생각하면서 다음 날 아침 뜨는 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모으며 '죽음의 총연습'을 하기를 바랍니다.

< 매일밤 죽음의 리허설을 >

매일 밤, 자러 갈 때 '침대'를 '무덤' 삼아 죽음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의 마지막 날을 생각하며 깊고 고요한 호흡으로 내 영혼을 그윽이 바라보게 하소서!
언젠가 모두 죽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는 흙에 묻혀 먼지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잠을 자러 가면서 다음 날 아침 뜨는 해를 볼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죽음은 밤도둑처럼 찾아와 한 순간 모든 것을 허물고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주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삶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단지 '죽음' 을 벗 삼는 일 밖에 없음을 알게 하소서!
그러니 매일 침대에 들어 잠을 청하면서 '죽음의 리허설'을 합니다.
이러한 저의 죽음의 리허설은 더욱 더 생동감 있는 삶을 향한 전주곡이 되게 해 주소서!
매일이 마지막 날인 양 그렇게 보낼 수만 있다면 우린 언제 어떻게 죽더라도 죽음은 그저 삶의 연속일 뿐입니다.
그러니 매일 침대를 무덤 삼아 눈을 감고 깊은 호흡 속 영혼을 만나며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렇게 눈을 감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