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이 여성에게 말하다

제21회 슬픔 : "신앙인에게 슬픔이 재앙일까요?"

재생 시간 : 25:20|2011-04-22|VIEW : 2,107

때론 신앙심 깊은 사람은 슬픔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슬퍼하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으니 기뻐하자.''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하면서 슬픔을 누르려 하기도 합니다. 가끔 저 역시 사람들에게 "수녀님도 슬프세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

때론 신앙심 깊은 사람은 슬픔을 표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슬퍼하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갔으니 기뻐하자.'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하면서 슬픔을 누르려 하기도 합니다.

가끔 저 역시 사람들에게 "수녀님도 슬프세요?"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살레시오 성인은 좋은 슬픔은 자비와 회개이며 나쁜 슬픔은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마르게 한다고 합니다.
악마는 특히 슬픔과 우울을 사랑하는데 이는 악마자신이 슬픔과 우울의 운명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좋은 슬픔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좋은 슬픔의 감정으로 나쁜 슬픔을 멀리할 수 있을까요?

슬픔자체는 아름답습니다.
슬픔은 내면의 참본성에 귀 기울이게 하고 감정을 정화시켜주기도 합니다.
이웃의 슬픔 속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며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줍니다.

라자로의 죽음을 보고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하여 눈물을 흘리신 예수님은 결국 라자로를 죽음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진심으로 흘리는 눈물은 또 다른 생명을 낳게 해 줍니다.
그러니 울고 싶을 때 울었으면 합니다. 미소만큼 눈물도 아름답습니다.
다만 살레시오 성인이 염려하는 사탄이 좋아하는 과도한 슬픔은 불면증과 우울증 현실도피와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여 신앙도 기피하게 됩니다.

"슬픔이 지나치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고 마음의 슬픔은 기운을 떨어뜨린다." (집회 38, 19)
그렇다고 슬픔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제하면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려는 두려움에 시달리거나 기억력에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함께 슬픔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주변사람들의 슬픔도 미리 알아채 함께 나누려 하고 내가 슬플 때는 친한 가족이나 이웃에게 마음을 열어 나누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하느님과 마주 앉아 원망도 불평도 털어놓았으면 합니다.
하느님과 마주하면 슬픔을 마주하게 되고 슬픔은 그대로지만 그렇게 마주한 내 자신이 변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하느님 앞에 징징대던 어린아이가 성숙한 신앙인으로 마주앉아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슬픔을 잔치로 바꾸어" (에스테르기 4)달라고 기도합시다.
오늘의 슬픔이 얼마간 지속되겠지만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우리 믿음의 순수성" (베드로 첫째 서간 1, 7)으로 주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이 생명으로 드러나듯 (2고린4, 9) 우리의 슬픔은 예수님의 생명으로 드러나 부활하리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