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민신부의 신학하는즐거움

제25회 세상의 완성,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재생 시간 : 46:21|2011-05-23|VIEW : 4,881

제2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종말론에 대한 이해 1. 출발점 : 세상의 종말, 두려운가요?1) 종말에 대한 오해와 편견    ① 영화 이야기 : 타이타닉 - 20세기초(1912년) 인간의 기술진보의 좌절의 역사        ● 배 침몰 ...

제2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 - 종말론에 대한 이해

1. 출발점 : 세상의 종말, 두려운가요?

1) 종말에 대한 오해와 편견

    ① 영화 이야기 : 타이타닉 - 20세기초(1912년) 인간의 기술진보의 좌절의 역사

        ● 배 침몰 직전의 장면 : 신부가 신도들을 잡고 바치는 마지막 기도 : "새 하늘과 새 땅" (시작기도)

        ●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묵시 21, 4) ⇒ 우리가 마지막에 찾는 것

        ● 좋아하는 영화 : 재난 영화 -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

        ●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 : 외계인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인류를 말살시키는 영화

        ● 공통점 - 지구 종말 앞에서 인간의 무력감 / 마지막 인간의 인류애의 표현(가족애, 진실한 화해, 사랑) /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의 반전

    ② 지구 종말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

        ● 나의 개인적인 죽음의 불안과 고통 -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 세상의 종말 뒤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2. 죽음, 내 인생의 마지막 말인가요?

1) 죽음 앞에 선 인간

    ①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 죽으면 끝인가? - 내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불안)
        
        ● 생의 해석학 (생의 의미 물음과 기획의 단절 - 의미부재의 체험)

    ② 죽음에 대한 인간의 태도

        ● 갑작스런 죽음의 공포에 대한 태도 : 부정과 고립 - 거부와 분노 - 타협(기도와 애원) - 병으로 인한 우울감과 좌절(실의)- 수용(호스피스)

        ● 죽음을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 자신의 노년의 생을 정리하는 시기

2)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

    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 뉴에이지 영성에 따른 환생에 대한 희망 (자살 급증의 이유)

    ② 종교적 삶에로의 투신 : 죽음을 넘어서는 희망 - 희망의 근거에 대한 신앙 전제

        ● 불교 - 죽음은 윤회의 삶의 또 다른 관문 (업보에 따른 인간의 재앙)

        ● 그리스도교 - 죽음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부활 신앙)

3)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가) 그리스도교 교리적 이해 (가톨릭 교리서 1006-1014항)

    ① 죽음은 인간의 죄의 결과(1008항) - 하느님의 창조 질서(창세기 이야기) :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 (창조주 하느님의 뜻과 어긋남) ⇒ "죽음은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파멸되어야 하는 원수" (1코린 15, 26)

    ②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의 의미 :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 - 성사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 필립 1, 21 :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이 이득입니다."

        ● 2티모 2, 11 : "이 말은 확실합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교 신앙 : 생명의 주인공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전제 - "삶과 죽음의 주관자"

        ● 로마 14, 8 :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부활에 관한 논쟁 : 하느님은 산 이들의 하느님 -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루카 20, 38)

    ④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의미

        ● 기스펠트 그레사케 : "죽음의 참된 극복은 우리 삶으로부터 죽음을 제거함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는 희망을 통해서 일어난다."

        ● "인간의 지상 순례의 끝이며, 지상 생활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실현하고 자신의 궁극적 운명을 결정하라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자비의 시간의 끝이다. 단 한 번뿐인 우리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친 다음에 인간은 또 다른 지상생활을 위해 돌아오지 못한다.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다. (히브 9, 27) 죽음 뒤에 환생이란 없다." (1013항)

        ● 환생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 - 일회적인 생명의 기회 ⇔ 인생의 패자부활전이 없다는 불교계의 비판??

        ● 하느님께로 돌아감의 의미(돌아가시다) : 코헬 12, 1, 17 :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 "나는 하느님 뵙기를 원하며, 그분을 뵙기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나는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⑤ 죽음 이후의 세상 : 내가 죽는다면?

        ● 육신의 소멸 : 죄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육신의 소멸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 영원한 생명에로의 초대

        ● 사심판 : 영혼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행실과 믿음에 따라 대가를 치르게 됨 (영생의 형태에 대한 심판)

            ☞ 1022항 : "각 사람은 죽자마자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께 셈 바치는 개별 심판으로 그 불멸의 형혼 안에서 영원한 갚음을 받게 된다. 이러한 대가는 정화를 거치거나, 곧바로 하늘의 행복으로 들어가거나, 곧바로 영원한 벌을 받는 것이다."

        ● 죽음을 통한 심판 : 하느님을 마주 뵙는 순간 - "나는 어떻게 그분을 만날 것인가?"

    ⑥ 천국이란? - 영원한 행복

        ●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1요한 3, 2),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기(1코린 13, 12)

        ● 거룩한 신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과 동정마리아, 천사들과 성인들과 함께 하는 생명과 사랑의 친교 - 인간의 궁극적 목적, 가장 간절한 열망의 실현, 가장 행복한 결정적 상태

            ☞ 인간이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태의 표상들 : 천국의 형태로 다양화 - 늘 배고픔 - 배불리 먹는 곳, 고통스러운 삶 - 고통이 없이 편안한 곳, ....

            ☞ 1코린 2, 9 :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 지복직관의 행복 - 현세에서 미리 맛볼 수 있는 하느님의 영광 :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

    ⑦ 연옥이란? - 마지막 정화

        ● 정화의 불, 내세에서야 용서 받을 수 있는 죄

        ●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전통 : 마카베오서 (2마카 12, 45) - 죄로부터의 해방 (죽음 이를 위한 보속과 대사의 전통) ⇔ 개신교 외경으로 거부

        ● 성인들의 통공의 의미 - 죽은 이와 산 이의 공덕의 연결점

    ⑧ 지옥이란? - 마지막 정화

        ● (1033항) "죽을 죄를 뉘우치지 않고 죽는 것은 영원히 하느님과 헤어져 있겠다고 우리 자신이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 ⇒ 하느님과의 의도적 단절의 책임 (하느님과의 친교를 스스로 거부한 상태)

        ● 지옥의 참된 고통 : (1035항) "인간이 창조된 목적이며 인간이 갈망하는 생명과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신 하느님과 영원히 단절되는 것"

        ● 우리가 생각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상태 : 지옥의 형태 ⇒ 영원한 벌의 형태의 다양화

        ● 근래 신학적 논쟁 :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2베드 3, 9)

    ⑨ 최후의 심판 - 공심판

        ● 진리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각 사람이 하느님과 맺은 관계의 진상이 결정적으로 밝혀지는 것(1039항) - 마태오 복음 25장

        ● 신학적 의미 : (1040항) "사람들이 저지른 모든 불의에 대하여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며, 당신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모순을 마침내 정의롭게 만드심,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신비들을 풀어주실 날 ⇒ 새 하늘과 새 땅 (2베드 3, 13)

4) 인간의 부활 사건의 의미

    ① 부활에 대한 오해와 편견 : 그리스도교 복음의 진수이자 핵심이지만, 동시에 적지 않은 이들에게 걸림돌

        ● 종교로서 그리스도교가 여타의 종교들과 구분되는 자신의 가장 궁극적인 종교 원리의 하나로 이해 ⇒ 신자들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함

        ● 현대인들이 부활 신앙을 흔히 불교의 윤회나 환생, 종말론에서 나타나는 육신의 소생 등과 같은 형태로 잘못 이해되는 문제

    ② 중요한 점 : 죽음과 죽음을 넘어선 영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 흔히 죽음 이후의 영원을 시간과 공간이라는 경험적 범주로 상상하는 것

        ●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을 가지고 상상하는 것일 뿐

        ● "내가 생의 시작 이전의 나를 상상할 수 없듯이 죽음은 죽음 이후의 나를 현실적인 경험 범주에서 상상하는 것을 포기시킨다. 한마디로 죽음은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실존적 마침"

    ③ 죽음 앞에서 인간의 실존적 태도

        ● "나는 아무런 희망 없이 죽음에 자신을 내 맡길 것인가?"

        ● "죽음 이후의 막연한 희망에 전 실존을 걸 것인가?"

        ● "왜 나의 생 안에서 고귀하게 간직해온 정신적 자산들, 즉 사랑, 충성, 고통, 책임, 자유 등은 아무런 의미 없이 끝나야 하는가?"

        ● "우리는 과연 영원히 살길 바라는가? 우리가 죽음을 넘어 영원한 삶을 바란다면 내가 바라는 그런 삶은 과연 어떤 형태이어야 하는가?"

            ☞ 우리가 바라는 영원한 삶은 과연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현실과 같은 형태 안에서 더 이상의 고통과 아픔이 없는 형태일까? 아니면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일까?

        ● 칼 라너(K. Rahner) : "우리의 삶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영구히 머무르기를 바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은 자연히 지금의 실존 양식의 종결을 지향하는 것이다. 만일 시간이라는 것이 종결되지 않는다면 시간은 미쳐 버릴 것이다. 만일 영구히 존속한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지옥일 것이다. 만일 모든 것을 나중 기회로 연기할 수 있다면 어떠한 현시점도 소중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떤 일도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어떤 일도 전혀 중요성을 지니지 못한 허무에 빠질 것이다."

        ● 인간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단어 : 희망 - 즉, 인간이 체험하는 세상 안에서의 불완전성, 불안, 우연성의 체험들이 완성될 것을 희망하는 일 없이 인간은 현실을 살 수 없음

        ● 문제 : 영원한 삶의 희망의 근거이자 지평 - 주관적 자기 위안이나 투사가 아니라 인류에게 보편적 희망이자 참된 현실의 완성 ⇒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은 영원을 체험하는 장소

        ● 영원의 체험

            ☞ 시간 속에 시간 자체가 익어서 열매를 맺는 것이란(칼 라너)

            ☞ 인간은 본성상 자신이 시간을 지배하는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철저하게 시간이라는 지평에로 자신을 내 맡기는 일 없이는 그 완성을 기대할 수 없는 존재

        ● 한 인간이 죽음을 넘어선 영원을 체험한다 : 죽음 이후에나 발생하는 시간적인 표현이 아니라, 시간 안에서 자신의 생을 긍정하고 죽음까지도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시간 이후에 나타날 어떠한 댓가도 기대하지 않는 자유로운 결단 속에서 체험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이후의 체험이 아닌 현실의 체험

            ☞ 영원성의 체험 - 현실 안에서 맛볼 수 있는 완성된 행복

            ☞ 나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가장 행복한 순간에 한결같은 느낌 - "지금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소망

            ☞ 시간이 멈추길 바란다는 것은 더 이상 시간이라는 제약 속에서 불완전과 미완성의 고통이 아닌, 충만된 시간, 더 이상 시간 안에서 바랄 것이 없는 영원한 그 무엇을 체험했음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

    ④ 참된 부활의 체험

        ● 시간 안에서 영원한 하느님의 시간을 체험하는 것 : "진정한 부활이란 구체적인 인간 존재가 하느님에 의해서 하느님 앞에 궁극적으로 구원되는 것" ⇒ "하느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체험"

        ● 육신 부활의 희망 : 인간의 육신이 썩어 없어질 육신이 아닌 영적인 몸(1코린 15, 44)으로,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될 것을 희망

4. 세상의 종말은 언제 올까요? -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

1) 인간과 물질세계 사이의 깊은 공동 운명

    ① 내가 죽은 이후에도 세상은 그대로 존재할까? - 과연 세상의 종말은 언제인가?

        ● 개인적인 측면 : 나의 죽음과 더불어 시간의 종료가 선언 - 세상의 종말의 체험 - 영원성에로의 초대

        ● 객관적인 측면 : 세상의 종말 - 역사의 완성(完成) : 하느님이 시작하신 역사를 하느님께서 완성하신다는 확신

    ② 창조 질서의 회복

        ● 최초의 창조의 질서를 회복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의 중요성

        ● 인간의 협력의 필요 (모든 피조물의 탄식 - 생태계, 인권, 가난, 불의, 고통)

            (로마 8, 19-23)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2) 종말론적 선취의 체험

    ① 시간 속에서 살면서 종말 사건을 미리 맛보는 것

        ● 종말에 발생할 사건의 선체험 : 인간 역사의 완성 - 하느님 사랑과 정의, 리의 성취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약속에 대한 희망

    ②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희망

        ●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로지 아버지만 아신다." (마태 24, 36)

        ●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

        ● 우리와 우리 세상의 완성을 향한 그리스도 신앙의 고백 - 예수님을 시작이요 마침으로 고백하는 태도 : 주님, 저는 영원히 당신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