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철신부의 TV성서못자리 사도행전

제55강 바오로의 로마 압송과 그곳에서의 선교 5

재생 시간 : 47:10|2015-12-18|VIEW : 5,293

드디어 로마로 압송되는 바오로... 주님께서는 부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선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명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바오로를 통해 완성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 바오로는 엄청난 고통의 순간을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바오로의 그 시...

드디어 로마로 압송되는 바오로...

주님께서는 부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선포하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명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교를 박해했던

바오로를 통해 완성되려 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 바오로는 엄청난 고통의 순간을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바오로의 그 시련을 우리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거센 풍랑과 험란한 항해 여정으로 수 없이

죽음의 위기에 놓였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고

죄인의 신분으로 끌려가는 몸이면서도 위험에 처했을 때

당당히 나서서 “두려워마라! 하느님께서 지켜주신다.”며

일행들을 안심시키고 이끌었습니다.

매 순간 바오로와 함께 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바닷길로 향하는 바오로의 마지막 선교 여정을

이 시간을 통해 만나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나는 하느님을 믿습니다.’

 

<출연 찬양 사도>

정겨운 카타리나 / 해금연주자

<시작기도>

정치도, 종교도, 그리고 자연마저도 바오로를 위협하며

숨 가쁘게 삶의 시간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다마스쿠스에서의 체험 이후 바오로의 삶은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유다교 안에서 간직해왔던 확신과 신념을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칠 만큼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체험은 강렬했습니다.

그러기에 어떤 상황도 바오로를 두려움 속에 가두어 둘 수는 없었습니다.

집요한 유다인 지도자들의 음모와 모함을 받아오면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고 당당했던 바오로의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확신에 찬 행보가

급기야 그를 죄인의 몸으로 로마까지 압송하게 하는 운명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복음을 선포했다는 이유로 죄인의 몸이 되어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까지 압송되게 된기구한 한 선교사의 운명을 보며 많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섭리하심과 실질적인 고통의 현실적인 수용’이라는 두 실재를

어떻게 조화시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시나마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현실 안에서 바오로가 감내해야만 했을 인간적인 갈등과 고통의 무게를 얼마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약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현주소를 직시하며

어느 때 보다 주님의 은총을 필요로 하고 있는 우리를,

흔들림 없이 당신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붙잡아주시고 힘을 보태 주시옵소서.

언제나 우리 편이 되실 것임을 언약해 주신

승리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성경 봉독 : 27,1-12> <28,1-6>

우리가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가기로 결정되자, 그들은 바오로와

다른 수인 몇을 ‘황제 부대’의 율리우스라는 백인대장에게 넘겼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시아의 여러 항구로 가는

아드라미티움 배를 타고 떠났다.

테살로니카 출신인 마케도니아 사람 아리스타르코스도 우리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시돈에 닿았다. 율리우스는 바오로에게 인정을 베풀어,

바오로가 친구들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보살핌을 받도록 허락하였다.

그곳을 떠난 우리는 역풍이 불었기 때문에 바람이 가려진 쪽으로

키프로스 섬을 돌아, 킬리키아와 팜필리아 앞바다를 가로질러

리키아의 미라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백인대장은 이탈리아로 가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그 배에 태웠다.

우리는 여러 날 동안 느리게 항해하여 간신히 크니도스 앞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맞바람 때문에 더 다가가지 못하고,

바람이 가려진 살모네 쪽을 향하여 크레타 섬으로 갔다.

우리는 간신히 살모네를 지나 라새아 시에서 가까운

‘좋은 항구들’이라는 곳에 닿았다.

많은 시일이 흘러 단식일도 이미 지났다. 그래서 항해하기가 위험해지자,

바오로는 경고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내가 보기에 이대로 항해하면 짐과 배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위험하고 큰 손실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바오로가 한 말보다 항해사와 선주를 더 믿었다.

그 항구는 겨울을 나기에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곳을 떠나 할 수만 있으면

페닉스에 도착하여 겨울을 나기로 의견을 모았다.

페닉스는 크레타 섬의 항구로서 남서쪽과 북서쪽을 바라보는 곳이었다.

<28,1-6>

우리는 목숨을 구한 뒤에야 그 섬이 몰타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원주민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인정을 베풀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데다

날씨까지 추웠으므로, 그들은 불을 피워 놓고 우리를 모두 맞아 주었다.

그런데 바오로가 땔감 한 다발을 모아 불 속에 넣자,

독사 한 마리가 열기 때문에 튀어나와 바오로의 손에 달라붙었다.

원주민들은 뱀이 바오로의 손에 매달린 것을 보고,

“저 사람은 틀림없이 살인자다. 바다에서는 살아 나왔지만

정의의 여신이 그대로 살려 두지 않는 것이다.” 하고 서로 말하였다.

바오로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뱀을 불 속에 떨어 버렸다.

원주민들은 바오로의 몸이 부어오르거나

당장 쓰러져 죽으려니 하고 기다렸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며 지켜보았지만 그에게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생각을 바꾸어 바오로를 신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