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일곱교황

2회 비오 12세

재생 시간 : 51:14|2020-07-02|VIEW : 2,918

교황 비오 12세(Pius XII) 제 260대 교황, 재위기간 1939년 3월 2일~1958년 10월 9일 1876년 로마의 벌률가 집안에서 출생한 비오 12세 교황은 1899년 사제수품을 받고, 1901년부터 교황청 특무성성(외교부)에서 일했다. 교회법에 정통한 박사로 10년이 넘게 교회법전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고 교황청...
교황 비오 12세(Pius XII)
제 260대 교황, 재위기간 1939년 3월 2일~1958년 10월 9일

1876년 로마의 벌률가 집안에서 출생한 비오 12세 교황은
1899년 사제수품을 받고, 1901년부터 교황청 특무성성(외교부)에서 일했다.
교회법에 정통한 박사로 10년이 넘게 교회법전 편찬에 참여하기도 했고
교황청 외교관 학교에서 국제법 강의하기도 했다.
1917년부터는 10년 넘게 독일 교황대사 역할 수행하며
히틀러와 나치가 준동하던 독일의 상황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다.
1930년 국무원장에 임명돼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포루투갈, 미국 등을 방문하며 바티칸을 대표해 외교협약을 맺고
그리고 1939년 3월 2일, 본인의 예순 세 번째 생일날
제 260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평화를 간절히 원하셨던 교황 비오 12세는
‘평화의 교황’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교회가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던 것과
유다인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비오 12세 교황은 ''''교황청 구제위원회''''를 통해 전쟁으로
고통 받는 이들 위한 구호 노력을 적극적으로 펼쳤고
비밀리에 유다인들을 돕고 구출하기도 했다.

라디오와 TV 등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비오 12세 교황님은
다음 세대 교황님들의 개혁을 위한 씨앗을 뿌려 놓은 분으로 평가 받기도 한다.

1939년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조상 제사에 대해
관용적인 조치를 내렸고, 1942년에는 노기남 대주교를
서울대교구장에 임명하기도 했다.
1948년 제 3차 유엔 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받는 데는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