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신부의 행복선언! 팔복

제10강 행복디자인, 21세기 행복선언

재생 시간 : 50:05|2009-11-23|VIEW : 13,411

행복을 원하십니까? 성공을 원하십니까? 성인 성녀 되기를 원하십시오!차동엽신부가 소개하는예수님의 행복선언, 팔복!이번 강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그리고새롭게 시작됩니다.강의로써가 아니라21세기, 우리의 삶으로써...그러기 전에 정리삼아 다시 한번 되짚어봅니다.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여덟 가지 행복입니다.찬찬히, 하나 하나 마음 속으로...

행복을 원하십니까? 성공을 원하십니까? 성인 성녀 되기를 원하십시오!

차동엽신부가 소개하는
예수님의 행복선언, 팔복!

이번 강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됩니다.

강의로써가 아니라
21세기, 우리의 삶으로써...

그러기 전에 정리삼아
다시 한번 되짚어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여덟 가지 행복입니다.

찬찬히, 하나 하나
마음 속으로 되뇌어 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가만히 되뇌어 보니
각 행복 별로 강의를 들을 때
인상적이었던 말들이
머리 속에 함께 맴돕니다.

"가난한 사람 뒤에는 누가 계신다?"
"하느님이 계신다"
"오늘도 살려주셨구나, 오늘도 지켜주셨구나
오늘도 먹을 것을 주셨구나..." -가난-

"네 눈물을 거두어라!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슬픔-

"온유는
주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는 것"
"온유한 사람은 힘있는 사람이 됩니다" -온유-

"의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
하느님은 알고 계신다 이거에요"
"보상해주리라! 채워주리라!!" -의-

"자비는 선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온다"
"주어라! 받을 것이다" -자비-

"마음이 깨끗해지면
자연의 소리가 들립니다
하느님의 소리가 들립니다" -깨끗-

"하느님의 평화는
문제가 없을 때 뿐 아니라
문제 한가운데서도 평화를 줍니다"
"평화는 말로서 이룩하는 것
폭력의 90%이상은 말로서 이뤄진다" -평화-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목숨을 내놓는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거죠?" -박해-

뭐... 이런 말들이었는데요.

매주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강의를 듣고 또 듣다보니
매미 울음 소리처럼
머리 속에서 맴돌던 말들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이번 강의의 어떤 부분이
맴돌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차동엽신부님은
이 여덟가지 행복이 결국에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귀결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 '슬픔', '온유'는
하느님 앞에서는 보잘것 없는 인간일수밖에 없는
'나'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
즉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의탁하는 삶을 살 때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얻는 행복인 것입니다.

'의', '자비', '깨끗', '평화'는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우리들이 함께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제시한
'의'와 '자비'와 '깨끗'과 '평화'를
구하고, 바라고, 닦고, 추구하는 삶을 살 때
누리는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소망'함으로써 얻는 행복인 것입니다.

'박해'는
하느님을 지독히도 사랑하기에
그 사랑을 위해
핍박받기를, 목숨 바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해
마련된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함으로써 얻는 행복인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하느님을 믿고(믿음)
하느님의 것을 바라며(소망)
하느님을 늘 생각하며(사랑)
사는 사람은 '100% 행복 보장'이라는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결론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약간 실망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예수님의 행복선언, 팔복이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고 틀림없는 행복공식을
전해주고 있다고 해서
뭔가 색다른 것, 뭔가 눈에 보이는 것
뭔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기대했는데
결국 결론이 '믿음', '소망', '사랑'이라니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그래 예수님의 행복선언 안에 담긴
21세기 '참 행복의 길', '참 행복의 원리'가
다시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사는 거였단 말입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 그동안 숱하게 듣고 보았던
이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단어가
예수님의 행복선언 강의을 마무리하는
지금에 와서는 좀 달리 보입니다.

그냥 말이나 단어로서가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있는 '무엇'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꽃....

그렇습니다. '불꽃'처럼 느껴졌습니다.

관념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불꽃'으로 존재하는 것.
이념이 아니라 '삶'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

그럼...
그 '불꽃'을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내 안에
그 '불꽃'을 꽃 피우며 사는 것일 수 있을까?

또 다시 난관에 봉착한 느낌입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게 문제였습니다.

늘 깨닫지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깨닫고도 깨달은대로 살지 못하는게 문제입니다.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길을 뻔히 알고도 가지 못하는 것 말입니다.

그때
정말 벼락처럼 들려온 말이 있었습니다.

"너!
성인 성녀 되기를
원하라!"

마음 속에서 따라 울립니다.

(너! 성인 성녀 되기를 원라하!)

"변변치 못한
성인성녀 되기를 원치 말고
완전한 성인 성녀 되기를 원하라!!"
또 따라 울립니다

(변변치 못한 성인성녀 되기를 원치 말고
완전한 성인성녀 되기를 원라하!!)

몇 번을 반복해 울립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행복선언,
그것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또 특별히 다른 누구를 대상으로 한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너'
나를 향하고 있고, 여러분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행복선언이 자꾸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 별종의 사람들을 향한 것으로만 생각해왔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성인들은
원래부터 제자들이나 성인들이었지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라고만 여겨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예인, 부자, 권력가는 꿈꾸면서도 성인 성녀는 좀처럼 꿈꾸지 않습니다.

성인 성녀는 우리의 모범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았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다 그 분들은 우직하게, 또는 무식하게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것을 바라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로 합니다.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자신의 모든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기 시작합니다.

그런 성인 성녀를 뒤따르는 일
완벽하게 따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설사 그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분들의 뒤를 따르길 원하는 일.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불꽃'을 꽃 피울 수 있습니다.

행복을 원하십니까?
성공을 원하십니까?
성인 성녀 되기를 원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