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엽신부의 향주삼덕

제12강 사랑의 성장

재생 시간 : 48:42|2010-08-05|VIEW : 14,036

남을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마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베푸십시오! 하느님을, 그 사랑을 알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1코린 13,13)[차동엽신부의 향주삼덕] 이제 그 마지막시간입니다...

남을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마십시오! 용서하십시오! 베푸십시오! 하느님을, 그 사랑을 알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1코린 13,13)

[차동엽신부의 향주삼덕] 이제 그 마지막시간입니다.

그동안, 신앙의 삶이 무엇인지, 하느님께 나아가는 삶은 또 무엇인지, 발견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가진 신앙이, 우리가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이 결코 예사롭거나 예사로운 존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며, 놀랍고, 가슴 벅차고,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기쁨,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아니 하느님을 너무 작게 보아왔는지 모릅니다. 나를 포장하는 여러 악세서리 중에 하나로만 생각해 왔는지도 모릅니다. 나의 '부분'일 수는 있어도 '전부'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늘 '신앙' 보다 '신앙 아닌 것'이 앞섰고 '하느님'보다 '내'가 우선했습니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잘 되지도 않았으면서...

"'믿음'을 가졌다"하면서도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말'로 믿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한 때만 믿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항구하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지면서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그 분을 '주님'이라 부르고, '평화'를, '구원'을, 가져다 줄 분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믿음을 제대로 몰랐습니다.
왜 믿는 것인지, 무엇을 믿는 것인지, 어떻게 믿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흔들렸습니다. 믿음이, 신앙이, 흔들렸습니다.
믿어도 믿지 않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니 우리는 희망해도 하느님의 것은 없었습니다.
나의 희망만 있을뿐이었습니다. 욕망에서 오는 희망.
아무리 희망해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희망이었습니다.
이루어진다해도 '허무'와 '또 다른 상실'을 가져다 주는 희망이었습니다.

우리의 희망이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하느님으로 인해 이뤄지는 것임을 '믿음'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 분이 나의 주인임을, 구원자임을 믿고 고백하면서 어찌 그 분 이외의 것을 바라며 그것이 이뤄질 것을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희망은 참된 희망이 되고 확실하게 응답받을 수 있는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희망은 무엇일까요?
인류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희망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거기에 사랑이 있습니다.

우리를 당신 사랑의 동반자로 창조하신 사랑, 우리가 아무리 실망시켜드리고 언제 봤느냐듯 배신해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 나의 문제에 같이 고민하시고 나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며 나의 죄 때문에, 나 한 명 때문에 가슴 아파하시는 사랑, 하느님은 그 무한대의, 그윽하고도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사랑이 우리들 안에서도 머물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3, 34)

그러면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우리들 사이에 머물게 할까요?

첫째는 서로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단죄하거나 심판하기에 너무도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단죄와 심판은 하느님의 몫으로 남겨 두십시오.

둘째는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명명백백한 잘못도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용서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쁨이 찾아오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용서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셋째는 서로 주고 베푸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주면 하느님께 받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것을 탐하면 하느님의 것을 잃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주고 베푸는 이유는 우리 안에 똑같은 사랑의 하느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 저것 재지 말고 주십시오. 거침없이 받을 것입니다.

넷째는 내가 만난 하느님을, 그 사랑을 서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얻으면 다 얻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하느님, 내가 얻은 하느님 사랑, 어찌 말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어찌 알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랑한다면 전하는 것입니다.

향주삼덕. 결국 신앙은 우리가 필요에 따라 잠시 찾는 삶의 '한 부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쳐 구해야 할 '삶의 지표'이자 '전부'인 것입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 그 안에 우리 삶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 그리고 진정한 기쁨과 평화와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이제와 영원히, 지상부터 천상까지. 아멘."